이것이 새로 바뀐 北여권-AIDS검사증














▲ 북한의 여권 ⓒ데일리NK
데일리NK는 6일 중국 내 소식통을 통해 2000년 이후 새로 바뀐 북한의 여권을 입수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사람이 해외로 나갈 때는 여권과 ‘국제여행건강증명서’ ‘국제에이즈바이러스 항체검사증명서’를 같이 구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북한의 여권은 2000년 이후 새로 제작된 것으로, 이전의 여권은 붉은색의 비닐재질이었다.

前 체코-북한신발합영회사 사장을 지낸 김태산 씨는(2002년 입국) “극심한 외화사정과 기술의 부진으로 여권의 질이 너무 나빠 통과하는 나라마다 몇 번씩 위조여권 소지자처럼 조사받아 부끄러웠다”며 “특히 북한은 테러위협국으로 지정돼 유럽지역에서 북한 여권을 내밀면 철저하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건강증명서와 에이즈검사증명서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했던 검사 때문에 발급하게 된 것이라 김 씨는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약도 제대로 없어 예방접종도 하지 않은 채 건강증명서를 발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누가 여권을 발급받는 것일까?















▲ 에이즈 검사 증명서. 북한은 해외에서 체류하다 돌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에이즈 검사를 철저히 실시한다. ⓒ데일리NK
북한에서 일반인들이 여권을 가져 본다는 것은 평생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국가업무상 해외출장을 나가는 사람들도 규정상 3개월 동안 본인이 속한 행정부서와 당위원회, 해당 간부과, 보위부, 안전부, 무역성, 외무성, 중앙당 담당부서, 중앙당 파견과, 중앙당 간부부의 심의를 거친 후 외무성의 해외파견 강습을 1주일 이상 받아야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북한 여권의 종류는 외교여권, 공무여권, 일반여권 등 3가지가 있다.

외교여권은 외무성 간부, 중앙당 해외출장 간부, 기타 중앙당 통전사업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며 경제 관료들은 성,중앙기관의 부부장 이상급(차관급)에게만 발급된다.

공무여권의 발급은 국가사업차 해외출장을 가는 무역 및 일반경제 관리들에 해당된다.

일반여권은 말 그대로 일반 노동자들과 기술자들, 산하공장의 근로자들이 필요에 의해 무역간부들이나 경제간부들을 따라 출장갈 때 사용되는 1회용 여권이며, 사용 후에는 외무성에서 100% 회수하여 소각한다.

외교여권과 공무여권은 사용기한이 5년이며, 출장 갔다온 후 즉시 반납해야 한다. 반납된 여권은 외무성 여권과에 보관되며 다음 출장시에는 전과 같은 경로를 거친 후 다시 받을 수 있다.

여권을 인쇄하는 곳은 위폐제조 공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평안남도 평성시 사회안전부 화폐공장이다.

해외 출장자가 외무성에 여권을 받으러 갈 때는 출장기간 동안 식량배급을 타지 않는다는 증명으로 직장에서 ‘식량 임시정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해당 배급소의 확인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출장을 갔다온 후에도 여권을 반납해야만 ‘식량 임시정지 증명서’를 다시 찾아 배급을 탈 수 있다.

식량의 이중 공급을 막는다는 목적도 있지만, 여권을 100% 회수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1년에 여권을 발급받는 출장자 수는 3만 명 미만이라고 한다. 북한인구의 0,14% 정도가 해외출장이라는 자유 아닌 자유를 며칠씩 누려보는 것이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최전호 기자(평북출생, 2003년 입국) cjh@dailynk.com

<다음은 김태산씨가 기고한 글>

한국에 와서 가족들의 여권을 신청한 지 일주일도 안돼 여권이 발급됐다.

물론 사용기간은 5년짜리다. 이것을 본 친구들이 가족을 데리고 어디로 떠날 것인가 다그쳐 물었다. 미국에 가려느냐고 묻는 친구도 있다.

나는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정작 가족들의 여권을 손에 쥐었건만 갈 곳을 정하지는 못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여러 곳을 두루 다녀본 나로서는 내 삶의 고향 평양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다시 타향에 삶의 짐 보따리를 풀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돈을 10만원씩이나 들여가며 가족들의 여권을 만들었단 말인가? 자그마한 증명서 하나에 정치성까지 부여해 너무 요란한 정의를 내린다고 비난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결단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권은 인간들에게 부여된 자유를 상징하는 징표 중의 하나”라고…

그래서 나는 당장 필요가 없으면서도 가족들의 여권까지 모두 만들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도 실제로 자유가 허용되는가를 확인하고 싶었고, 또 목숨보다 귀중한 자유의 징표를 항상 몸 가까이에 두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북한에서도 나는 여권을 마음만 먹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만들 수 있었고, 남한에 같이 있는 가족도 여권을 가지고 해외생활을 같이 하던 이들이다.

만일 나와 우리가족이 여권이라는 자유의 징표가 없었다면 어찌 이 자유로운 나라로의 안전대로를 기약할수 있었겠는가?

수십만의 탈북자들이 여권이라는 이 자유의 징표가 없기에 얼마나 무서운 민족적 멸시와 인간 이하의 천대를 당했던가? 가시 철조망을 더운 피로 적시며 소리없이 죽어간 불쌍한 인생들은 또 과연 얼마였던가?

사랑하는 자식을 찬바람 부는 남의 나라 모래사막에 눈물로 묻은 인생들, 그리운 부모 형제를 두만강가에서 잃고 시체도 못찾아 사진 한 장 놓고 눈물로 제를 올리는 이들, 그대들이 남한에서 처음으로 자유의 징표를 손에 쥐는 날, 그 자그마한 수첩의 무게가 얼마이며, 그 속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그대들은 창공을 날으는 자유로운 새가 된것이기 때문에…

김태산/前 체코-북한신발합영회사 사장(2002년 입국)















▲ 건강증명서. 검사를 받으러가면 약이 없어 예방주사도 맞지 못한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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