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세력 지키려고 우리 아이들 목숨 바쳤나”

기나긴 추위가 지나고 비로소 봄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던 2010년 3월 26일의 일이다. 백령도 남방 2.5km 지점에서 경계임무 중이던 초계함 천안함(1,200톤급)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두 동강 난 채 침몰했다. 겨울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 46인의 장병들이 가라앉았다. 


군과 민간의 수색 작업 끝에 희생 장병들의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유족들은 그 자리에 쓰러져 오열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도 비통함에 휩싸였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나누고자 했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이 깊었다.


그로부터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유족들은 그리움과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17일 실종 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해 왔던 천안함실종자가족협의회 이정국 전(前)대표를 만나 유족들의 근황을 들어봤다.









▲ 이정국 씨는 ‘천안함 용사’는 잊더라도 ‘천안함’은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봉섭 기자


‘천안함 용사’ 故 최정환 중사의 매형인 이정국 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뒀었다. 장병 가족들을 대표해 사고 처리를 도맡고 가족들을 챙겨야 하다보니 생업에 종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씨는 최근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 시간강사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천안함 희생 1년이 지난 지금, 처남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겠다는 굳은 결심이 그를 다시 뛰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천안함 상처는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은 듯 했다. 이정국 씨는 “벌써 1년이 지났다. 최 중사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라는 물음에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라며 고개를 떨군다.


그는 “피붙이가 아닌 내가 이정도인데, 장인이나 장모님, 아내는 물론 최 중사의 아내는 어떻겠는가. 정환이가 ‘없다’고 느낄 때 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곤 한다”며 아직도 가족들이 느끼고 있는 깊은 슬픔을 전했다.


인터뷰 내내 최정환 중사를 ‘동생’이라고 부르던 그는 최 중사가 입던 옷을 줄여서 입기도 한다고 했다. 처남이자 동생인 최 중사를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의미다.


현재는 유가족 단체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유가족들의 근황에 대해 천안함 장병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관심이 유족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씨는 “‘천안함 용사’는 잊더라도 ‘천안함’은 잊지 말아 달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천안함을 계기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확고히 하고 정부가 재발방지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장병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당부였다.


이 씨는 “천안함 장병들의 죽음으로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유족들은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실체가 다시 한번 알려졌다. 북한의 도발로 대한민국의 아들이 있는 어떤 가정이든 천암함·연평도 같은 비극적인 일을 당할 수 있다. 안보의식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유족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북한을 감싸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이 씨는 “키 리졸브 훈련을 중단하라고 시위하는 사람들은 임진각에 가서 ‘북한 핵무기 개발 중단하라’ ‘도발을 중단하라’라는 시위를 해 본 적이 있느나”라며 “‘평화’와 ‘화해’를 원하면 남과 북에 동시에 요구해야지 왜 한국만을 비난하는가. 그런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주는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을 지킨다고 젊은 아이들이 죽어나가니 속상하고 답답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아직까지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한번만이라도 천안함이 있는 평택 2함대 사령부에 가서 직접 그 잔해를 보라. 천안함 침몰 원인이 어뢰로 인한 피격이 아니라면 그렇게 처참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는 천안함 불신세력을 만든 데에는 정부의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국방부 장관은 처음부터 북한의 개입을 배제했었다. 그랬다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하니 국민들이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면서 “발표내용이 바뀌고, TOD 영상이 편집되고 설계도가 바뀌는 등의 일련의 사태가 국민들에게 불신을 키운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모든 의혹들을 깨끗하게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천안함 유족으로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밉지 않다. 다만 국민들을 못 믿게 만든 정부와 군이 문제”라면서 “왜 국민들의 의혹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설득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라고 질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천안함 유족들에게 희생 장병들을 대신해 건강하고 보람된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건강하시라’라는 말 밖에 전할 말이 없다. 남은 인생을 보람 있게, 죽은 장병들이 봤을 때 기뻐할 만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천안함 가족들은 뭔가 다르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