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국제민군합조단의 조사보고가 있은 후에도,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광우병 촛불시위 때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물로 간주하던 시민단체와 여론들, 그리고 자칭 ‘언론검증단’은 지속적으로 논란을 확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에 있는 자연과학자, 정치학자가 가세하여 합조단의 조사발표를 과학이 아닌 궤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 버지니아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이승헌 교수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한국정치학을 가르치는 서재정 교수는 ‘노틸러스(nautilus.org)’라는 북한문제 관련 사이트에 장문의 글을 기고하여 천안함에 대한 공식적인 원인규명이 거짓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또한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지질학 연구원으로 있는 양판석 박사는 한국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동시에 포항공대생명정보학 사이트인 ‘BRIC’에서도 합조단의 발표를 명백한 허위라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이 종전된 날인 7월 27일 한겨레신문은 ‘러시아해군전문가집단의 보고서 요약’이라는 것을 게재하였다. 그 핵심은 천안함이 외부폭발에 의해 침몰된 것은 옳지만, 천안함은 스크류가 어망에 걸려 해저에 부딪혀 훼손되고 수뢰의 안테나와 접촉하여 폭발 후 침몰하였거나, 혹은 내비게이션 이상으로 우연히 한국의 어뢰에 피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그 근거는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국방부는 ‘천안함 Story(http://choeonan46.go.kr)’라는 사이트를 열어 매우 설득력 있는 반박문을 게재하고 있으나, 이 사이트의 방문자는 극히 적어 그 효과는 미미한 형편이다. 마치 촛불집회시 농수산부의 광우병 관련 게시판 방문자 수와 흡사하다.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합조단의 조사보고는 전체적으로 매우 논리적이며, 그 핵심주장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반복하지만 인양된 천안함의 함체 자체가 좌초나 피로파괴, 내부폭발일 수가 없고 남는 것은 외부폭발일 뿐이다. 그리고 인양된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물과 함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동일한 물질이고, 이 물질은 폭발에 의해서 생성된 것임이 수조폭발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나아가 문제의 어뢰가 정보기관이 입수한 북한어뢰의 설계도와 일치하다는 점에서 ‘천안함이 북한어뢰에 의한 폭침되었다’라는 결론은 논리적으로 부정이 불가능하다.
II.
따라서 핵심은 천안함이 외부폭발에 의해 침몰하였다는 증거, 문제의 어뢰에 붙은 흡착물과 천안함 함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동일하며 동시에 폭발에 의해 생성된 물질이라는 점, 그리고 그 어뢰가 북한제라는 것만이 중요하며, 나머지 모든 의혹이라는 것은 사실상 곁다리 의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지난번에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스웨덴 조사단원은 프로펠러의 변형에 대한 원인규명은 천안함 폭침의 원인규명과 무관하므로 전혀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좌초설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민주당의 최문순 의원이 사고해역을 살펴보고 암초가 없으며 천안함이 항해하기에 충분히 깊다는 것을 확인한 사실이 언론에 이미 오래전에 보도되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또 이승헌, 서재정 교수 주장의 핵심이 알루미늄 분말을 오븐에서 가열시켰다가 물에 수 초 냉각시킨 실험의 결과라는 점에서, 폭발에 의한 물질생성과는 전혀 다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한국의 몇몇 언론에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있고, 이들의 주장이 과학이고 합조단의 주장은 조작이라는 보도 역시 블로그들을 포함하여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
다른 한편 함체와 어뢰의 흡착물이 합조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수산화알루미늄이라는 양판석 박사의 주장은 수산화알루미늄이 폭발에 의해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합조단의 주장을 전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수산화알루미늄이 물속에 한 달 반 이상 잠겨 있으면 액체와 고체의 중간 형태인 겔(젤) 상태여야 하고, 그것은 인양 시에 쉽게 육안이나 촉감으로 확인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합조단이 양판석 박사의 핵심주장을 재반박하였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합조단은 민노당의 이정희 의원에게 함체와 어뢰의 흡착물을 제공하여 이의원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오래 전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분이 수산화알루미늄이라는 북한에게, 즉 민노당에게 극히 유리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양판석 박사는 합조단이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의 제기자 한 명 한 명이 재조사 내지는 시료를 요구할 때마다 합조단이 이에 응해야 한다는 식이다.
한겨레신문이 ‘러시아해군전문가집단의 보고서 요약’이라고 제시한 내용은 솔직히 너무 엉성하여 그 출처가 극히 의심스러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비교해 보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분명하다:
한겨레가 보도한 러시아보고서요약 중:
천안함에 탑승해 있던 승조원이 탑승 승조원들이 부상당했다고 해안 통신병에게 핸드폰으로 알린 시간이 21시 12분 03초로서, 이 첫 통화시간 기록은 한국 측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합조단 조사내용:
‘승조원들의 부상사실을 통보하기 시작했다는 21시 12분 03초의 통화 보도’와 관련하여, 사건 발생전 천안함 승조원의 통화내역을 확인한 결과, 부상사실을 통보한 것이 아니고 승조원 상병 ㅇㅇㅇ이 중사 ㅇㅇㅇ의 휴대폰(010-5087-xxxx)을 빌려 동생 ㅇㅇㅇ(010-9160-xxxx)과 21시 12분 03초부터 21시 21분 47초까지 휴대폰 2회, 집전화(054-932-xxxx) 3회 등 5회에 걸쳐 전화를 하였으며, “남의 전화기를 빌렸기 때문에 통화요금이 많이 나오면 안된다며 집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여 사적인 통화를 하였다”고 동생 ㅇㅇㅇ이 진술하여 일상적인 통화로 확인되었습니다.
한겨레보도 러시아보고서 내용과 합조단 조사내용의 차이는 해석의 여지가 전혀 없는 단순 사실 확인의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인가 사실 조작을 하였다는 것이다. 빨리 그 사실을 확인하면 어느 정부 하나는 국제사회에서 국격이 ‘국가를 참칭(僭稱)하는’ 북한정권 수준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어 마땅하다.
III.
한국도 이제 음모론(conspiracy)이 민주주의(democracy)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가 되었다. 미국인의 대부분이 그 어떤 음모론 하나를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있지만, 한국의 경우 각종 음모론, 조작론의 폐해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우 이러한 음모론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주장될 뿐 아니라, 이런 음모론의 핵심인물들이 미국처럼 극우나 극좌, UFO 신봉자 혹은 유사종교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학계, 시민단체, 공식언론과 주요 정당의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뼈아픈 사실은 이러한 음모론에 자연과학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광우병 촛불시위 때에도 소수의 자칭 광우병 전문가라는 자연과학자들이 그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위치하였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한국사회는 아직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길이와 무게를 재는 것 자체는 정치와는 무관한 약속에 불과함에도 도량형이 일치하지 않으면 크고 작은 싸움이 도처에서 일어나게 된다. 인간의 이해관계가 도량형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과학적 문제해결 자체는 정치와는 무관하지만, 자연과학적 문제해결에 이론(異論)이 생기면 사회는 이해관계에 따라 순식간에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 1964년 겨울,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찹쌀밥으로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묻는 문제를 자연과목 18번으로 출제하였다. 정답은 1번 디아스타제였으나, 2번 무즙을 선택한 학생들의 부모들은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고,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고을 수 있음을 솥과 무와 찹쌀을 들고 와서 학교 앞에서 실제로 보여 주었다. 이것이 명문중학 입학을 두고 벌어진 유명한 ‘무즙 파동’의 시작이었다.
천안함 폭침사건에 자연과학자들이 개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적 분석과 판단이 요구되고 있고, 여기에 이론이 있을 수 있음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극히 민감한 자연과학적 문제해결 혹은 진상규명에서 이론제기와 그 해명이 지극히 비이성적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천안함 폭침의 경우 그 ‘임시최종보고서’를 군사기밀이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면 공개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일정기간 동안 시민단체, 자연과학자들의 이의 신청을 받고, 여기에 대하여 또 공개적인 답변을 포함하여 최종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이것이 선진국의 관행이다. 시민단체, 언론, 자연과학자들은 임시최종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불필요한 의혹제기를 피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의문과 의혹제기는 정보 부족에서 나온 자가발전식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도 논란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면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해당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모여 ‘○○위원회’를 만들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를 통해서 얻은 결론이 한국의 공식기관의 결론과 계속 일치할 때, 정부기관의 공식조사발표가 그 권위를 획득할 수 있다.
현재 천안함 폭침을 놓고 벌어지는 이 끝없는 논란은 결국 신뢰의 위기에서 오는 것이고, 신뢰의 위기는 공식기관의 권위를 상당수 음모론자, 조작론자들이 정치적 이유로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정부가 그 권위를 외부로부터 획득하는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이 점을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촛불시위와 천안함 폭침 합조단 조사결과발표 후에 실시된 6.2지방선거 참패를 겪고도 전혀 배우지 않고 있다. 어쩌면 모든 문제가 경제 하나로 해결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혹시 대통령이 지시한 ‘광우병 촛불시위 백서’는 준비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