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2011 국제 윤이상작곡상 결선연주회 및 시상식이 열린다. 스스로 설명하기를 ‘민족주의자 윤이상(1917.9.17~1995.11.3)의 음악정신을 기리고 남북문화교류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5년 창립된 윤이상평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이다.
대상 수상자의 상금만 해도 2만 달러에 달하는 국제적인 음악행사다. 그렇지 않아도 오길남 가족 밀입북, 아내 신숙자 씨와 딸 혜원 규원 수용소 억류사건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윤 씨가 비록 고인이지만 또 다시 위대한 음악가이자 민족주의자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그보다 앞선 지난달 18일 통영예총과 산하 15개 문화단체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윤이상을 옹호하는 성명서 “또 다시 상처 받는 용, 윤이상”을 발표했다.
이들은 “윤이상 선생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으로 인해 고인이 된 한 예술가의 명예와 그의 고향인 예향 통영에 심대한 흠집을 내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전제하고 “선생의 오길남 월북권고에 대한 증거는 없으며 이는 일방적인 매도에 불과하다”고 소리 높이 외쳤다.
또한 소위 윤이상의 육필(肉筆)원고라는 것을 들고 나와 윤 씨의 결백을 주장하며 일사분란하게 단체사진까지 찍었다. 지역신문은 윤 씨의 육필원고를 대서특필했다. 그들의 논리는 윤 씨의 육필원고는 진짜지만, 오길남이 쓴 친필원고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언제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조작이 되어 왔다며 소수의 권익을 외쳐대던 사람들이 당시 독일 사회의 기득권층이던 윤이상이 쓴 글은 진짜이고, 납북 후 제3국에 숨어 살았던 오길남이 쓴 글을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견강부회에 능한 표리부동한 집단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길남 씨의 삶의 행적과 그가 겪은 일들에 대한 진지하고 가슴 아픈 검토 없이 윤이상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앞세워 오길남의 친필수기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이없는 발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행동은 통영(윤이상과 신숙자의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차마 못 볼 것을 본 느낌이었다.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민족이 ‘카더라!’에 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육필원고가 진실을 담고 있느냐 거짓으로 가득 찼느냐를 떠나 육필원고라는 말자체가 어긋난 표현이다. 육필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조어이며, 한자문화의 발상지인 중화권에서는 아예 쓰지 않는 말로 친필원고라 해야 옳다. 육(肉)이라는 한자는 중화권에서 기본적으로 해석하기를 돼지고기를 뜻하므로 육필원고는 돼지인간이 쓴 글이 된다.
윤이상은 1963년 4월 처음으로 북한에 밀입북 한 이래 죽기 전까지 17번이나 북한을 방문한 이례적인 친북반한(親北反韓) 인사이다. 남한 출신으로 그만큼 북한을 제집 드나들듯 한 인물은 일찍이 없었다. 오길남 씨 증언에 따르면 윤이상은 북한에 입국해서도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특별 대우를 받기 때문에 얼굴도 보기 힘든 인사였다고 한다.
윤이상이 평양 순안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어떤 신분증을 제시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윤이상의 주 임무는 유럽주재 한국 유학생을 포섭해 북한으로 입북시키는 대남선전이었다.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에 근무하는 남한 출신 인사들 중에는 윤이상이 독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입북한 인사들도 여럿이었다. 그 결과 그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로부터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이를 선전하는 북한의 책자는 한 두권이 아니다.
북한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지만, 윤이상은 북한주민들의 굶주림과 인권착취에 대해 하모니카는커녕 버들피리 한번 불지 않았다. 그리고 노년에도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 단 한 번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 예술의 궁극적인 덕목이자 최대선은 휴머니티이다. 북한 주민과 납북자 가족의 고통에 눈을 감아 버린 한 예술가의 음악을 칭송으로만 일관해서 될 일인가.
진보의 덕목은 순수와 양심이라고 외대던 그들이다. 고향 사람마저 인간지옥에 빠뜨리고 영웅이 된 그를 바라보는 절대다수의 침묵이 암울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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