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북핵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기 위한 우리 정부의 북핵 해법이 ‘중대제안’과 함께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차기 회담에서도 쟁점이 될 수 밖에 없는 북핵 폐기와 그에 상응한 보상조치에 대한 정부의 복안이 12∼13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한과 정부의 ‘중대제안’ 발표를 계기로 해서 그 얼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쟁점은 고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의 존재 인정 문제를 포함한 모든 핵폐기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인 대북 에너지 지원, 체제안전보장 등 크게 3가지다.
정부는 9일 북한의 6자회담 복귀선언 직후인 10∼12일 이종석(李鍾奭) 사무차장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그리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로 그 격(格)을 높여가며 각각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실무대책회의, 고위전략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6자회담 전략과 실질전인 진전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장관은 이를 바탕으로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12일 만찬회담을 갖고 4차 회담의 달성 목표와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14일 한미 실무회의와 한.미.일 고위급 회의, 그리고 주말께 한중 협의에서 구체적 대책이 논의된다.
무엇보다 핵심은 우리 정부의 ‘중대제안’을 작년 6월 3차회담에서 나온 안들과 어떻게 조화시킬 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 대북 에너지 지원..‘중대제안’으로 해결 = 북한의 가장 큰 관심사는 체제안전보장이지만, 에너지 지원도 그에 못지 않게 북한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부존자원 고갈과 외화부족으로 에너지원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면서, 경제가 10년 이상 사실상 마비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북한이 생산할 수 있는 최대 전력 총량은 700만㎾ 정도라고 하지만, 가동률이 20∼30%에 불과해 200만㎾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의 중대제안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제네바 합의의 100만㎾ 경수로 2기 건설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북한의 희망이 사라지자 경수로 건설공사를 종료하는 대신,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200만㎾의 전력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 행정부의 공식 라인은 일단 중대제안에 대해 일단 ‘합격점’을 주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12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13일 공동기자회견에서 각각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방안”, “북한 에너지 수요 충족 문제를 (핵)확산 위험없이 다룰 수 있는 매우 창의적인 구상”이라며 적극적인 지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북한의 선택으로 일단 ‘6.17 평양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중하게 검토해 답변하겠다”고 답한 점을 감안하면 ‘긍정’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답은 없는 상태다.
중대제안이 대북 상응조치의 한 축인 에너지 지원문제를 해소하는 특단의 대책이라는 점에서 본회담 재개 전에 북한이 화답하고 나선다면 4차 6자회담은 나름대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다자 체제안전보장..북, 수용 가능성 =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북한은 자국의 체제안전보장은 오로지 미국만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6자회담 틀내에서의 양자회담 만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외견상 접점찾기가 불가능해 보이지만 우리 정부는 다자안전보장이 훨씬 더 ‘확고하다’는 논리로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 다자안전보장을 할 경우 미국이 그 약속을 깨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의 반발에 부딪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6.17 면담’에서 정동영 장관이 이를 설명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리가 있다. 앞으로 신중히 검토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 이후 북한 당국에서 의미있는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과거와는 다른 긍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제법 있다.
정부는 작년 6월의 3차 6자회담에서 나왔던 다자 체제안전보장 방안을 업그레이드해 본회담에서 추가적 논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HEU문제..‘북은 사찰수용, 미는 거증책임을 져라’ = 지난 세 차례 회담에서도 미국은 ‘있는 것 다 안다. 스스로 밝히라’고 주장했고 북한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맞서면서 그 존재 여부를 놓고 팽팽히 맞서 잇다.
중단 13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13일 공동기자회견에서 “핵프로그램 포기라는 것은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다 다뤄야 한다”고 분명히 밝힌 것은 차기 회담에서도 HEU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HEU 문제와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어떻게든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플루토늄 문제와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플루토늄 핵은 궁극적인 폐기를 전제로 ‘동결 대 보상’의 원칙을 적용하되, 이와는 달리 HEU 핵은 상호불신 해소 작업을 선행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북한은 결백하다면 입증을 위해 사찰을 수용해야 할 것이고, 미국은 무작정 자백만 강요하지 말고 거증의 절차를 거칠 것을 권유하는 방법으로 중재한다는 것.
특히 북한의 경우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남한의 ‘핵’도 사찰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북한이 원한다면 남한은 물론 주한미군 기지도 보여주는 일종의 상호사찰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이 사찰을 허용하면 그에 맞춰 미국은 과거 금창리 사례와 마찬가지로 여러개의 ‘의심’ 지역을 찍어 확인하는 절차로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절차를 통해 서로에 대한 불신이 일정 정도 해소되면 HEU 문제를 둘러싼 극단의 대치도 풀려 나가지 않겠느냐는 게 정부의 생각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런 방안에 대해 북미 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다.
우선 이달 27일께로 예상되는 제4차 6자회담 이전의 사전협의 과정에서 접점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본회담에서 HEU 문제는 미루고 플루토늄 핵 문제라도 ‘성과’를 도출하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향후 6자회담 과정이 순조로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전협의도 되지 않고 본회담이 열려 HEU 문제로 충돌한다면 이번에도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