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청장…노래나 부를줄 알지?”

지난달 28일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청에 대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은 한바탕 웃음바다를 연출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을 겨냥해 문화유산을 복원한데 필요한 기와 1장 가격이 얼마인가를 물었다. 제아무리 마당발이라는 유 청장도 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이 의원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청장이 그걸 알겠어? 노래나 부를 줄 알지?”

이 의원은 6ㆍ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통일대축전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유 청장이 방북 이틀째인 올해 6월 15일, 북한의 박봉주 내각총리 주최 만찬에서 부른 북한노래 ’이름 없는 영웅들’로 곤욕을 치른 일을 은근히 부각시켰던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유 청장은 만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북한의 김수학 보건상 요청에 따라 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 노래가 한국전쟁 때 남파된 간첩을 영웅으로 예찬한 노래라는 거센 논란에 휘말리면서 유 청장은 사퇴 압력까지 받았다.

북한에서 돌아온 직후인 같은달 19일, 기자는 강원 강릉 보현사라는 사찰에서 유 청장을 만났다.

당시 이곳에서는 강원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보현사 발굴조사 설명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그곳에 유 청장이 나타난 것이다.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 유 청장은 부인을 동행하고 있었다.

이 ’노래 사건’에 앞서 유 청장은 박정희 한글글씨인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 아산 현충사는 박정희 사당과 같은 곳이라는 논란, 익산 미륵사지 동탑이 복원이 잘못됐다면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으면 한다’는 논란 등등의 구설에 휘말렸다.

그래서 기자는 “왜 또 북한까지 가서 사고를 냈느냐”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대뜸 그는 “야, 김 기자, 그래도 그 덕분에 하나 챙긴 게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얘기인즉 이랬다.

북한가요 ’이름 없는 영웅들’이 한국에서 한창 문제가 되기 시작한 16일, 그런 소식을 유 청장은 권호웅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에게서 전해 들었다.

“권 단장이 ’유 청장, 큰일 난 것 같소. 노래 불렀다고 남한에서 들고 일어나 난리인 모양이오”라고 알려주었다.

권 단장은 아마도 인터넷이나 남한 TV뉴스 등을 통해 남한측 소식을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감해진 유 청장은 그 순간 권 단장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단장께서 절 좀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소?”

“북관대첩비 말입니다. 그 반환문제를 남북한 장관급 회담 주요의제로 채택하도록 합시다.”

“그거라면 어려울 것도 없지요. 그 문제를 의제로 올리도록 하지요.”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는 제기되었으나 그 때마다 없던 일로 되곤 했던 북관대첩비 반환문제가 ’성사’ 쪽으로 급속히 방향을 틀기 시작한 순간이다.

이 문제는 사실 민간차원에서 주로 논의됐지, 남북한 정부나 일본정부 차원에서 다뤄진 적은 없었다.

다른 문제와는 달리 유 청장과 권호웅 단장이 약속한 북관대첩비 반환 문제에서 남북한이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당시 유 청장은 이 문제를 꺼내면서 북한측에 “우선 남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비를 반환받은 뒤에 우리가 이를 보존, 복원처리한 다음에 북한에 돌려주자”고 제안했고, 이에 대해 권 단장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로부터 약 넉 달이 흐른 10월 20일, 마침내 북관대첩비가 일본으로 반출된 지 꼭 100년만에 인천공항을 통해 귀환했다.

북관대첩비는 보존처리를 거쳐 적절한 시점을 택해 북한에 인계된다.

물론 북관대첩비 반환이 성사된 밑거름은 그동안 민간차원에서 줄기차게 제기된 반환운동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예상보다도 더욱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홍준의 ’노래사건’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둘 만할 듯하다.

이런 일을 두고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을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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