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하 “한반도평화, 남북이 주도해야”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바람직한 한미공조’ 방향에 대해 국민의식과 외교전략 양면에서 대미 `의존자세(client mentality)’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총재는 이번 주 발행되는 한국국제정치학회 소식지 최신호와 인터뷰에서 `진정한 한미공조의 의미’와 ‘북한문제 해법과 관련한 한미공조의 나아갈 방향’에 관한 질문에 한국 국민 의식의 문제로 “미국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안보와 외교에서 미국의 후광에 너무 기대하는” 점을 들고 이러한 의존자세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외교가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 총재는 또 한미간 역할분담 문제도 제기, “한반도의 장래문제에 관하여는 한국이 주도, 미국이 보조하고, 핵문제에선 미국이 주도, 한국이 보조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핵문제에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 문제가 불가결한 요건이 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도 한국의 교섭참여가 절대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힘을 한반도에 적절히 빌릴 필요는 있으나 미국은 또한 세계를 상대해야 하므로 한국의 이해 특히 정책우선(priority) 판단과 항상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1996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있을 때 자신이 “우리나라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핵심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남.북.미.중 4자회담 구상을 통해 “남북을 포함한 한민족이 한반도 평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미국과 중국은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4-2 원칙’을 미국과 합의했다고 회고했다.

이 원칙은 “미국은 한반도 상태와 관련한 문제에선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즉, 미국은 (한국을 제외한 채)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며, “중국과 미국을 설득해 한국의 외교 주도권을 확보한 것이 바로 4자회담”이라고 유 총재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6자회담에서도 “남북이 중심이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남북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게 바람직하고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극도로 축소”되고 있던 상황의 실례로, 유 총재는 1994년 북미간 제네바합의 이후 북한이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1994년 핵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북한과 대결구도를 원치 않았고, 심지어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 일본을 공식방문하는 계획이 있음에도 한국은 방문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바람에 막판까지 힘겨운 노력 끝에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으로 낙착된 비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외무장관 재임 때 서해를 비롯해 한반도에 방사능 오염이라는 환경재앙을 불러 일으킬 뻔 한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반출 계약을 당시 미국과 중국의 외무장관을 설득해 저지한 것을 “가장 외교적 의의가 있는” 성과로 제시했다.

그는 또 외교목표를 세우는 `외교정책(foreign policy)’과 이 목표를 달성하는 기술인 ‘외교(diplomacy)’간 구별 필요성을 강조하고 “디플로머시 분야에선 솔직히 한국의 외교수준은 북한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며 “북한은 대미, 대남 전문가들이 그 자리에 10-20년 포진하고 있는데 우리는 한 정권 아래 5명의 외무장관을 교체시킨 예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외교전문가도 “올림픽 대표선수를 기르는 것”처럼 시간과 자본을 들여 육성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비극의 역사를 체험했음에도 외교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고, 자세와 철학에서도 외세의존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과거 중국의 그늘 아래 있었고, 현대사의 대부분을 미국의 그늘아래 지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해야 한다는 인식이 약한 것”이라며 탈냉전,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평화를 정착시키고 분단을 극복하는 일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미국, 중국, 일본이 보조하는 외교구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거듭 `한국 주도’를 당부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외교관은 “말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가 세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서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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