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사실상 내정 반기문은 누구

천지가 개벽한 ‘개천절’날 유엔 사무총장직에 사실상 내정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겸비한 인물로 통한다.

`부드럽지만 안으로는 독하고 독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외유내강에 강이 하나 더 붙은 `외유내강강(外柔內剛剛)’형으로 불린다.

미소를 머금은 따뜻한 표정과 매너처럼 반 장관은 일로 충돌해도 절대 큰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는 강한 의지를 가졌다는 게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반 장관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 `일’에만 몰두하지 그 밖의 것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워커홀릭(workaholic)이다. 특별히 휴가를 가지도 않는다.

반 장관 스스로도 “대학 때 바둑 등의 취미를 가져보려고 했지만 그 보다는 학습에 시간을 더 집중하고 싶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거나 “외교관이 되고나서는 일하는게 너무 좋아서..”라고 털어놨다.

대학 때는 전공 이외에 영어와 프랑스어 등의 공부에 집중했던, 요즘 말로 `범생’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외교관을 꿈꿔왔다고 한다. 충주고 재학 시절, 갈고 닦은 영어실력으로 미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입상, 부상으로 그 시절 미국을 구경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때가 1962년이었다. 반 장관은 대회를 주최한 미국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장래 희망이 외교관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외교관이라는 꿈을 다졌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 1970년 5월 외무부에 들어와 40년 가까이 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다.

외교부내에서 그는 ‘특별히 기수가 없다’고 해서 ‘특기’로 통한다. 상하좌우의 모든 인사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는 `성실함’으로 유명하다.

선배들이 장관직에 오르면 대부분 그를 가까이 두려했다. 한 전직장관은 “반기문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관운이 좋았다.

외교부에서 차관보, 차관 등의 요직과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외교보좌관을 거쳤으며 마침내 참여정부의 두 번째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주니어 외교관 시절부터 유엔 관련 업무를 많이 맡았던 것도 눈에 띈다. 국제연합과 차석, 주국제연합 1등 서기관, 국제연합 과장 등을 역임했고 북미국장, 주미 공사, 외교정책실장 등을 거쳤다.

이런 경력으로 그는 2001년 9월 당시 한승수(韓昇洙) 외교부장관이 겸임했던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연합

발탁될 즈음 9.11사건이 발생해 그와 관련된 유엔 차원의 테러리즘 대응조치, 그리고 이견 조율 업무를 수행하는 등 나름대로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반 장관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새옹지마’라는 말을 많이 한다. 관직생활을 마감하는게 아니냐고 고심하던 그에게 한승수 장관이 그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그 즈음 그는 유엔 사람들과 정말 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됐다. 오늘날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할 수 있는 자양분을 미리 키웠던 것이다.

또 이라크에서 2004년 6월 ‘김선일 피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져 한때 입지가 흔들렸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올 2월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하게 됐다.

반 장관은 한 때 `주사’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고위직이면서도 그 직급에 관계없이 자질구레한 일도 손수 챙겼다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배려가 몸에 밴 탓인 지 지금도 부하 직원에게 출입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베풀어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업무와 관련해서는 철두철미하고 솔선수범형으로 통한다.

미흡한 점과 잘못은 분명히 지적하고 대안(代案)을 요구해 어지간한 준비없이 보고했다가는 당황하기 일쑤라는 것. 그러나 부드러운 어법을 사용하고 질책하는 일은 거의 없어 부하직원들이 보고를 꺼리는 일은 없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그의 독특한 어법은 유명하다. 장관실 문을 걸어잠그고 그와 30분만 독대를 하면 금세 `반기문 팬’이 돼버리고 만다.

그의 부지런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요일 출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게 몸에 배어있다. 미국과 유럽, 중동, 아프리카 출장의 경우 시차를 감안해 이동하는 시간에 비행기에서 숙박하는 일정을 잡는 게 다반사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에게 반드시 회신을 해주며 수많은 연하장을 보낼 때도 자신의 이름은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자신이 모셨던 노신영(盧信永) 전 총리에게서 ‘사람관리’의 비법을 배웠다한다.

그는 별도의 체력관리를 하지 않는다. “일하는 것 자체가 체력관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흐르는 물처럼 행동하며’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게 지치지 않는 비결이라고 자랑한다.

그는 특히 `낮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탓에 반 장관이 취임한 이후 주요 간부들이 점심식사후 10∼20분의 토막잠을 멀리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한다. 부득이 토막잠이 필요하다면 간부들은 부하 직원에게 `세면장에 갔다’는 본의 아닌 거짓말을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

보수적인 성향은 잘 알려져 있다.

외교라는 영역 자체가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는 점에서 그의 보수적 성향은 외교관 생활 속에서 배양된 것이라는 게 주변의 지적이다. 장관 취임후 그가 직전의 윤영관(尹永寬) 장관이 보여줬던 `발탁’ 인사스타일과는 달리 가능하면 연공 중심으로 인사를 한데서도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반 장관은 작년 10월 정부가 내부 논의절차를 거쳐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확정한 뒤 조용하면서도 철저하게 전 세계의 마음을 사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런 그에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면접’을 한 뒤 흡족해했다고 한다.

반 장관은 충주고와 충주여고간 학생회장단 간부 교류로 만난 유순택(柳淳澤) 여사와의 사이에 선용과 현희, 우현씨 등 2녀1남을 두고 있다. 둘째 딸 현희씨는 유엔아동기금(UNICEF) 직원으로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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