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표결의미, 좀 알고 말하자”

지난 17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의 회의록과 결과가 유엔 웹사이트(▶ 해당 페이지 바로가기)에 공개됐다. 회의록에는 각국 대표들의 발언과 진행과정, 표결시 찬성, 반대, 기권, 불참 국가들이 명기되어 있다.

알려진대로 북한인권결의안은 찬성 84, 반대 22, 기권 62개국으로 통과되었다. 결의안이 통과되자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은 “반대와 기권표가 절반이나 나온 점에도 상당한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이는 무지의 소산이다.

관련자료

◆ 60차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각국 표결 결과 ①

◆ 60차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각국 표결 결과 ②

北인권결의안, “역사상 유례없는 압도적 찬성”

유엔 표결에서 ‘기권(abstain)’이란 어떠한 효력과 정치적 의미도 없다.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닌 의사표현 자체가 없는 행위이며, ‘우리는 표결 내용에 대해 아는 바 없다’라는 뜻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권 표가 찬성에 가까운지 반대에 가까운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며, 유엔에서는 찬성 84, 반대 22라는 ‘찬반의 결과’만 의미를 갖는다.

수년간 유엔의 인권관련 의결을 지켜본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호크(David Hawk)씨는 이번 결과를 “역사상 유례없는 압도적 찬성”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표결한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인권결의안은 찬성 70, 반대 38, 기권 58로 통과됐으며, 이란에 대한 결의안은 찬성 77, 반대 51, 기권 46으로 통과됐다.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나라가 현격히 적다는 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불처리동의안도 제출 못해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은 인권결의안 표결 전에 ‘불처리동의안(no action motion)’을 먼저 처리했다. 불처리동의안은 이미 상정된 안건을 처리하지 말자는 반대안(反對案)을 말한다. 이는 이미 상정된 결의안의 내용에 반대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처리 방식에 반대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결의안에 동의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가라도 불처리동의안에는 찬성의사를 표시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에도 투르크메니스탄, 미얀마, 짐바브웨, 수단, 벨로루시, 콩고 등 6개국에 대한 인권결의안이 상정되었지만 짐바브웨와 벨로루시, 수단이 불처리동의안을 제출해 채택된 바 있다.

이번 총회에서 투르크메니스탄 불처리동의안은 찬성 64, 반대 70, 기권 26으로 기각되었다. 이란에 대한 불처리동의안 역시 찬성 70, 반대 77, 기권 23으로 기각되었다.

불처리동의안

인권결의안

찬성

반대

기권

찬성

반대

기권

조선(북한)

제출되지 않음

84

22

62

투르크메니스탄

64

70

26

70

38

58

이란

70

77

23

77

51

46

흥미로운 점은 투르크메니스탄 불처리동의안에 대한 반대가 70개 국가인데, 인권결의안에 대한 찬성이 70개 국가라는 것이다. 이란 불처리 동의안에 대한 반대 역시 77개국인데, 인권결의안에 찬성은 77개국이었다. 불처리동의안 반대가 그대로 인권결의안 찬성으로 옮겨간 것이다. 반면, 두 나라의 불처리동의안에 찬성했던 국가들은 인권결의안 표결에는 반대와 기권으로 갈라졌다. ‘불처리동의안’이 어떠한 성격을 갖는 표결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역시 불처리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불처리동의안이 압도적으로 기각되어 버리면 이중으로 망신을 당할까봐 그랬을 것이다.

북한의 ‘친구’ 시리아가 北인권결의 찬성을?

북한인권결의안 의결 뒤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표결 결과가 공식적으로는 84(찬):22(반)이지만 실제로는 84:23이다. 표결 이후 에스토니아와 시리아가 의사표시를 잘못했다고 정정을 요청했다. 에스토니아는 표결에 기권, 시리아는 찬성을 표시했었다. 북한과 무기거래를 하면서 절친한 시리아가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인권운동가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시리아는 반대하려 했는데 찬성으로 잘못 눌렀고, 에스토니아는 찬성하려고 했는데 기권으로 잘못 눌렀다고 의사발언을 했다. 유엔의 표결은 전자투표로, 투표 즉시 결과를 볼 수 있다. 30초 동안 수정할 기회를 주는데 에스토리아와 시리아 대표는 그 시간 동안에도 잘못 눌렀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유엔에서는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안이 아니면 첫 표결의 결과를 그대로 공식화한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84:22가 맞다. 나중에 시리아 대표가 북한에게 대단히 미안해 했다는 후문이다.

참고로, 유엔은 총회 산하에 6개 위원회를 두고 있다. ▲제1위원회는 군축 및 국제안보 문제 ▲제2위원회 경제 및 금융 문제를 논의하며 ▲이번에 북한인권결의안을 의결한 제3위원회는 사회적, 인도적 및 문화적 문제를 다룬다. ▲제4위원회는 특별정치 및 탈식민 문제 ▲제5위원회는 행정 및 예산 문제 ▲제6위원회는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현재 최영진 주유엔대사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유엔총회 제1위원회 의장에 피선돼 활동 중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