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원! 진짜 몽상가는 당신이야”

지난 12일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통일의 전망을 묻는 대학생들의 질문에 “혹시 사고라면 모르지만 3~4년 안에 통일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며 “그렇게 될 경우 하루는 즐겁겠지만 다음날부터 불행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논거는 이렇다. “북한 난민 100만 명만 서울에 들어온다고 해도 서울의 기능은 마비될 것”이란다. 과거 ‘민주투사 유시민’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되었으며 한치 앞도 못 보게 되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요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이기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이 붕괴되면 그 뒷감당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이상한 논리다. 내내 흡수통일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왜 이 대목에서는 흡수통일식(式) 주장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흡수통일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겠지만, 대체 누가 흡수통일을 하자고 했나?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그들은 시종일관 ‘북한=김정일정권’이라고 교묘하게 비틀어 이야기한다. 그래서 북한의 붕괴를 두렵다고 말한다.

김정일정권이 붕괴되어도 하나도 두려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물론 상당한 혼란이야 있겠지만 오늘 김정일정권 치하에서 북한 인민의 고통에 비하면 그 정도는 혼란도 아니다. 오히려 축복이다. 남한에서는 “개혁의 과정에 일정한 혼란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지독히 보수적인 관점을 내보이는지, 이 역시 아리송하다.

‘북한=김정일’ 아니다

김정일정권이 붕괴되어도 그것은 정권의 붕괴이지 북한의 붕괴가 아니다. 절대적 권력이 붕괴되고 나서 상당한 수준의 권력이 등장하기까지 일정기간 공백기가 존재하고 심각한 경우 내전까지 치달을 수 있겠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남한은 혼란기 북한의 치안을 담당해주는 준비에 만전을 기하면 되고, 김정일정권 이후 차기 정권은 북한 인민이 선택할 문제다. 지금 우리사회의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은 북한 인민들이 선택할 문제를 자신들이 고민하는, 북한 인민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저변에 깔고 있다.

이기주의자들은 ‘북한붕괴=통일’이라고 또 한번 교묘하게 비틀어댄다. 북한은 붕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분명히 붕괴될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정권이 붕괴된다고 해서 곧장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일은 김정일정권 이후 등장할 새 정권과 남한의 정권, 그리고 남과 북의 주민들이 협의하여 결정할 문제다. 주로 북한측에서 급격한 통일의 요구가 일겠지만 남과 북의 심각한 격차 등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되면 남북 주민들은 현명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진정으로 남북 주민들을 신뢰하는 태도이다.

문제는 이런 이기주의자들이 이른바 ‘386 정치인 그룹’에 많이 포진하여 있다는 것이다. 신새벽에 남몰래 민주주의 만세를 담벼락에 새기고 조국과 민중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할 각오가 되어있다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타락했는지 모르겠다. 남한 주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북한 인민들의 고통쯤이야 어쩔 수 없다는 태도인가?

김정일 정권 붕괴 이후, 그리고 통일의 과정에서 물론 남한 주민들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 위에 쌓아 올린 경제적 성과의 상당한 부분을 북한 주민들에게 내주어야 할지 모르며, 복지혜택의 상당한 부분을 반납하거나 연기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사치스러운 이익을 위해 동포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가? 이런 사람들이 운동권이었다니, 창피할 일이며 그야말로 ‘더러운 변절’이다.

판가리 싸움은 시작됐다

아주 심각한 문제는 이런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 자신을 현실주의로 치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 인민의 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개념 없는 사람들’, 혹은 몽상주의자로 매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을 북한 자체로 착각하고 북한 인민의 자주성을 무시하는 그들이야말로 앞뒤 못 가리는 ‘개념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희대의 독재정권을 계속 지원해주면 언젠가는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입 한번 뻥끗 못하며 설설 기는 그들이야 말로 몽상주의자들이다. 이런 것을 현실주의로 착각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정권을 그렇게 부단히 지원해 줄 돈과 열정으로 북한 인민의 투쟁을 돕든 일을 했으면 김정일정권을 몇 백 번은 족히 무너뜨렸을 것이다.

북한에 ‘판가리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이편 저편 갈라져 중립이란 없이 어느 한 쪽에 분명히 서야 하며, 한 측이 타 측을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야 끝날 수 있는 싸움을 말한다. 이제 정세는 우리에게 ‘판가리 싸움’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편에 설 것이냐 북한 인민의 편에 설 것이냐. 역사가 준엄히 그것을 평가할 것이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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