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 제조 “히틀러 창시-김정일 계승”

작전명 ‘베른하르트’. 이 작전을 제안한 독일 나치군 장교 베른하르트 크루거 소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전시에 적의 주요 기지나 거점을 타격하는 작전이 아니다. 역사 이래 유례가 없는, 적국(敵國)의 지폐를 대량으로 위조해 경제와 사회 전반을 교란시키겠다는 작전이다. 실로 ‘나치다운’ 발상이었다.

1942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전은 영국과 미국 화폐를 주 타깃으로 했다. 도대체 얼마를 위조해 유통시켰는지 파악할 수도 없지만, 돈이 워낙 많아 소각조차 불가능해 호수에 수장(水葬)시켰는데, 나중에 돈다발이 물 위에 둥둥 떠다녀 인근 주민들이 ‘돈 낚시’를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있다. 1945년에 찍어낸 돈만 1억3천만 파운드라 하고, 베를린 함락 후 2천만 파운드가 실린 트럭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위폐들은 유태인 강제수용소의 수인들을 동원해 제작되었다.

나치의 이 작전은 대체로 성공했다. 전시에는 물자조달이나 노임지급 등을 위해 많은 돈을 찍어내고 그만큼 인플레이션도 발생한다. 영국도 2차 세계대전 중 상당한 인플레를 겪었는데, ‘전쟁 중이라 어련히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지, 나치가 대량으로 위폐를 제조 유통시키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여간 찍어낸 돈에 비해 인플레가 심해 ‘무언가 이상하다’는 의구심만 갖고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치의 위폐 잔여분과 인쇄 원판 등이 발견되자 영국정부는 경악했다. 곧바로 지폐도안을 모두 바꾸었고 1980년대까지 그 여진(餘震)을 감당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美 “위폐제조는 전쟁행위”

현대판 ‘베른하르트 작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국무부는 40개국의 외교관과 위폐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유통 문제와 관련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위조달러의 제조 양상과 여기에 북한이 개입하고 있다는 각종 증거들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3년 전부터 국무부내에 ‘북한실무그룹(North Korea working group)’이라는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애셔 전 동아태 선임자문관이 이끈 실무그룹은 북한의 위조달러 ∙ 마약 ∙ 불법무기 제조, 유통 등 제반 국제범죄 행위를 추적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애셔 자문관은 지난 11월 ‘노틸러스 연구소’ 웹사이트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북한을 “국가 경제전략과 외교정책의 핵심의 하나로 범죄를 적극 지휘하는 세계 유일의 정부”라고 표현했다. 북한이 위조달러 및 아니라 유로화도 제조, 유통시키고 있다며 이를 “경제 전쟁 행위(act of economic war)”라 규정하고 북한을 ‘소프라노 국가’라 표현하기도 했다. 소프라노(soprano)는 수 년 전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마피아 두목의 이름이다.

애셔 자문관 뿐 아니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리즘 ∙ 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11월 16일 헤리티지재단 초청 연설에서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에 대해 언급하며 “심각한 결과(significant consequences)”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범죄정권(Criminal Regim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문제를 예로 들며 “(정권 차원에서) 그 같은 불법 행위를 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는 12월 9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 “미국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의 입장을 번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으며,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버시바우 대사에게 지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국제문제협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은 공공연히 핵개발을 하고, 달러를 위조하고,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다”고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를 기정사실화 했다.

北 위폐제조, 정황상 증거는 충분

그러면 정말로 북한은 위조달러를 제조했거나,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이 지난 16일 설명회를 가졌으나 아직까지 한국정부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위폐 문제와 관련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기란 어렵다. 나치의 위폐제조도 관련자들이 전범(戰犯)재판에 서고 폐기한 인쇄원판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정황상의 증거’일 뿐이었다.

미국과 위폐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위폐 제조에 대해 ‘정황상 증거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인터폴의 한 관계자는 “민감한 문제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북한은 슈퍼노트(Super Note)의 발원지로 오랫동안 의심받아 왔다”고 말했다.

슈퍼노트, 혹은 진본과 다름이 없다고 하여 ‘슈퍼달러(Super Dollar)’라고도 불리는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폐는 1990년대 이래 꾸준히 그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발견되어 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슈퍼노트가 발견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고, 특히 북한 외교관들이 소지하고 있다 적발된 경우가 많았으며, 지폐 제조의 정교함이라 필요한 재원, 인력상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어렵다.

물론 이러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이 시점에서 왜 하필 북한의 위폐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핵문제가 지지부진해 지면서 북한의 정권교체를 노리는 강경파의 입김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어놓기도 한다.

“당신 나라 돈을 위조한다면 가만히 있겠는가?”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온 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아주 상식적으로, 자국의 화폐를 위조하고 있는데 가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외교루트를 통해 미국에 불만 의사를 전달하면 미국 측에서는 “당신들은 당신 나라 돈을 위조하는 나라가 있다면 가만 있겠느냐”고 직설적으로 묻는다고 한다. 비교적 대북 온건파로 알려진 힐 차관보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96년 미국은 68년만에 100달러 권 화폐의 도안을 바꿨다. 그만큼 슈퍼노트가 미국에게 준 타격은 컸다. 세계 각국에서는 구권(舊券)의 효력을 묻는 질문이 쇄도했다. 그동안 미국은 슈퍼노트의 유통을 막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타국의 위폐를 제조하는 행위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더구나 기축통화로 활용되는 달러화를 위조하는 것은 세계경제를 파괴하겠다는 의도로 간주된다. 사실 북한이 위조달러를 제조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된다면, 그것으로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치른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명분이 없다.

둘째, 북한의 위폐제조가 멈출 줄 모르고,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최근 양적으로 크게 늘어난 탓이다.

북한이 1970년대 초반부터 위조달러 제조를 시도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북한의 위폐제조는 경제적인 목적보다는 냉전시기 반미항전(反美抗戰)의 유치한 전술 정도로만 여겨졌다. 수준도 조악했고, 양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사회주의권은 대개 루블화로 대외무역을 결재하였기 때문에 굳이 달러를 경제적 목적으로 위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80대 후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는 경제적 목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다. 슈퍼노트가 대량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슈퍼노트는 일련번호에 따라 슈퍼K, 슈퍼X 등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새로운 위폐 감별법이 발견되면 거기에 맞춰 진화(?)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정보당국은 엄청난 물량과 조직력을 갖춘 정권차원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북한을 강력히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지원을 해주고 있는데도 위폐 제조가 끊이지 않는 것도 ‘대북지원 회의론’을 확신시키는데 한몫 거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고, 6자회담이 진행 중인 이 상황에 왜 하필 미국이 위조달러 문제를 꺼내 놓느냐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계속해온 추적결과를 내놓는 것이고, 특히 9.11테러 이후 테러단체 및 테러지원국가의 ‘돈줄’을 끊어놓는다는 차원에서 3~4년간 집중적으로 진행해온 조사의 중간보고를 하는 셈이다.

돈줄 막힌 북한, 미국에 협상 콜(call)

셋째, 미국이 6자회담의 ‘채찍’으로 위조달러 문제를 활용하는 측면도 분명히 엿보인다.

미국이 순전히 선의에서 위조달러 문제를 최근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는 생각은 사실 순진하다. 당연히 여러 가지 복선을 깔고 있을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대북압박의 용도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 관리들은 이러한 압박책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미국이 중국 측에 요청해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을 통한 북한의 돈세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미국내 북한 기업의 자산까지 동결시키자, 북한은 물밑 라인을 통해 끊임없이 ‘협상 콜(call)’을 외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마카오는 북한의 불법행위가 활개를 치면서 최대의 돈줄이 되어왔던 곳인데, 그것이 차단됨으로써 북한이 입은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최근 북한은 최대 무역회사인 조광무역을 마카오에서 철수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이 그러면서도 6자회담의 결렬을 선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대북화해정책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채찍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대미(對美)라인이 완전히 깨지면 현재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자금라인마저 완전히 막혀버릴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속으로 씩씩거리면서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우리 페이스를 따라 올 수밖에 없다.”

미 국무부 대북협상 관계자의 말이다. 미국이 이번 기회에 북한의 버릇을 바로 잡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위조달러 이야기’ 끝)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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