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간 황장엽…그가 남긴 유산과 과제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전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민족의 운명 개척과 세계민주화라는 엄청난 화두를 온 가슴으로 품어왔던 노(老) 혁명가의 죽음은 북한민주화운동사(史)에서 가장 큰 손실로 기록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황 선생은 전쟁을 막고 북한의 세습독재에 대한 허구를 통렬하게 질타하던 훌륭한 애국자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황장엽 선생님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압제와 인권탄압 국가인 북한체제에 항거하고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희생까지 마다하지 않은 남북 분단시대의 큰 별이자 영웅”이라고 추모했다.


사실 그 어떤 찬사라도 황 위원장의 일생을 한번에 담아내기 어렵다. 황 위원장은 그가 사랑했던 가족, 민족, 인류의 삶을 모두 자신 안에 담으려 했다. ‘개인의 운명은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한다’는 그의 이론처럼 북한 인민들이 겪어왔던 고난과 아픔, 우리 민족이 겪어 왔던 분단의 고통과 상처들이 모두 황 위원장의 인생에 가득 새겨져 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청년 시절부터 품었던 ‘부강한 조국’의 염원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수령독재에 막혀 채 펴지도 못한채 좌절됐다. 민족의 발전을 염원하며 일생을 바쳐 일궈낸 그의 ‘인간중심 철학 이론’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우상화 도구인 ‘수령론’으로 변질 악용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부와 명예, 여생의 안락함을 내던지고 선택했던 남한 망명 생활마저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가 확인한 것은 북녘 동포들의 삶과 인권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무관심한 대한민국의 이기심 뿐이었다.


그러나 황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냉소와 일가(一家)를 몰살시켰던 김정일의 테러 보복에도 굴하지 않고 북한주민들의 해방과 우리 민족의 통일, 더 나아가 인류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13년 간 쉬지 않고 정진해왔다.


특히 인류역사에서 가장 무자비한 인권유린으로 꼽히는 김정일 폭정을 직접 목격했던 황 위원장은 그 누구보다 인간 본연에 대한 연구와 관심에 힘을 쏟았다.


황 위원장은 우선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사회적 협조성이며 이를 동시에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인간 운명 개척의 해답”이라는 ‘인간중심철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인간의 존재가치와 정신문명 훼손으로 압축되는 현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또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개인의 이해와 요구, 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일치 시킬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남겼다. 인간존중의 가치와 이념의 실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대에 한국사회가 찾아내야할 실마리가 황 위원장의 ‘인간중심철학’ 저서들은 오롯이 담겨있다. 


황 위원장은 인류가 겪고 있는 기아와 빈곤, 독재와 국가이기주의에 대한 해법에서도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그가 남긴 ‘세계민주화론’은 현시대 인류 발전의 출로를 ‘민주주의 발전’으로 잡고, 당면해서는 반독재 반테러에 대한 국제공조가 선차적임을 역설한다. 여기에 세계경제에서 자국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협상력을 더욱 높여야 할 것을 더불어 강조하는 등 지구촌 인류의 번영과 행복에 대한 사상적, 이론적, 방법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황 위원장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실체와 주민들의 처지를 전 세계에 있는 그대로 폭로했을 뿐 아니라 북한민주화 및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길을 알려줬다. 그가 반 평생동안 경험했던 북한 정권 내부의 실상은 북쪽에 대해 한쪽 눈을 감고 한쪽 귀를 막고 살아왔던 대한민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는 그의 증언과 분석을 통해 김정일이 왜 대량상살무기와 폭정에 의존하는 생존논리를 갖게 됐는지, 지금 현재 얼마나 많은 북한주민들이 신음하고 희생되고 있는지, 왜 김정일-김정은과는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협력이 불가능한지를 깨닫게 됐다.


북한의 테러와 암살위협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황 위원장의 투지와 배짱은 미래 북한 재건의 주역으로 자리하게될 국내 탈북자들에게 큰 희망이 됐다. 나이를 무색케 했던 그의 집필과 강연에서는 언제나 “탈북자들이 북한 해방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한 맺힌 절규가 살아 있었다. 탈북단체 인사들과 한국의 북한인권 운동가들에게 “북한 민주화를 준비하기 위해 남한출신 활동가와 탈북자 활동가들이 하나로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그 청사진을 제시했던 것이 황 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는 지금 황 위원장을 떠나보내며 3남 김정은에게 독재왕국을 물려주려는 김정일의 망상과 그 과정속에서 지금보다 몇 갑절 더 피눈물을 흘리게 될 북한 인민들의 처지, 핵 전쟁까지 염두에 둬야 할 만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불안 상황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황 위원장은 탁월한 사상과 이론, 민족과 인류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같은 위대한 유산(遺産)을 우리에게 남겼지만, 그가 못다 이룬  ‘북한민주화의 위업’이라는 부채도 남기고 떠났다. 


대한민국은 황 위원장에 대해 빚을 많이 졌다. 이제 그는 13년전 피흘리며 쓰려졌던 가족들과 재회하여 영면(永眠)에 들어 간다. 그의 타계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상념에 젖게 만들 것이다. 생전에 그가 남긴 주장과 지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더불어 황 위원장의 죽음이 ‘민족의 생명’으로 영원히 계승되는 것 역시 우리의 숙제가 된다.  


위대한 인간(人間) 황장엽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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