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수령 아닌 늙은 시체가 누워 있었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99번째 생일(태양절)이다. 금수산기념궁전은 김일성이 생존 시 사용했던 집무실 금수산의사당을 8억 달러(약 87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개조한 곳으로 그의 시신이 18년째 미라로 보관돼 있다. 태양절을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이라고 선전하는 북한에서 ‘금수산기념궁전’은 백두산과 더불어 대표적 ‘성지(聖地)’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이라고 해서 금수산기념궁전에 모두 가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신 성분이나 당원 여부 등에 따라 당국이 일괄적으로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금수산기념궁전은 생소한 곳일 수밖에 없다.


금수산기념궁전이 건설된 시점은 김일성 사후 3년 뒤인 1997년으로 북한에서 대기근의 후폭퐁이 몰아닥치는 시기였다. 탈북자들은 “궁전을 지을 돈으로 식량을 샀으면 굶어죽은 300백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데일리NK는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경험을 가진 탈북자 5인의 자문을 얻어 참배 루트와 내부의 구조를 낱낱이 파헤쳐봤다. 수백만 아사자의 목숨과 바꿔 건설한 금수산기념궁전은 마치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이 현세(現世)에 되살아난 형상이다. 


금수산기념궁전의 총부지 면적은 350만㎡, 지상 건축면적은 3만4910㎡에 달한다. 광장 앞마당 넓이는 한번에 2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10만㎡로, 김일성 광장의 두 배 규모다. 광장은 화강석 70만개를 20여 가지 모양의 규격으로 다듬어 깔았다.









▲데일리NK는 탈북자 5인의 증언을 토대로 금수산기념궁전 관람 루트와 외부진입로 추정, 재구성했다./그래픽=김봉섭 기자


금수산기념궁전은 주로 당 간부들을 비롯한 지도계층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일반 주민들도 간부의 추천을 받으면 참배가 가능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참배객들은 단체로 버스를 타고 와 금수산기념궁전 외랑(광장)을 가로질러 정면을 통해 입장한다.


하지만 금수산기념궁전까지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평양에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들어가는 전용 궤도전차(전동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궤도전차에서 내리면 금수산기념궁전 외랑을 통해 내부로 진입하는 수평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금수산기념궁전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이 잠들어 있는 성지인 만큼 입고 있는 옷을 깨끗이 정돈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에 앞서 신발 바닥을 물로 세척해야 하고 금수산기념궁전에 들어선 이후에는 탈의실에서 옷을 정돈하고 외투와 소지품을 꺼내 놓아야 한다. 남자는 양복, 여자는 한복을 착용한 사람만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김일성 전신 석고상 앞에 도착한다. 원래는 이 석고상을 앞에서 짧은 묵념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1998년 “김일성 어버이 수령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 살아계신 분에게 하는 인사처럼 하라”는 김정일의 명령이 나온 이후부터 몸을 숙여 인사를 해야 한다. 3사람씩 나눠서 인사를 하며 나머지 참배객들은 3줄로 나란히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김일성 전신 석고상을 참배한 후에는 ‘울음홀’에 들어간다. 이 홀에는 김일성의 초상이 들어간 화강석의 붉은 대형기가 있다. 좌우에는 김일성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 해놓은 벽이 있으며 바닥은 대리석이 깔려 있다.


참배객들을 이끄는 안내원들은 대리석의 하얀 무늬에 대해 “여러분들이 밟고 계신 바닥의 하얀 점들은 김일성 대원수님의 서거에 슬퍼하는 인민들이 흘린 눈물이 맺힌 것”이라고 설명한다.


울음홀 옆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드디어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방으로 들어설 수 있는데, 시신 방에 들어가기 앞서 공기로 몸을 소독하는 장치를 통과해야 한다.









▲데일리NK는 탈북자 5인의 증언을 토대로 금수산기념궁전 내부 구조와 참배 루트를 재구성했다./그래픽=김봉섭 기자


미라가 보존돼 있는 유리관은 2m 떨어진 곳에서만 볼 수 있다. 생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으며 김일성 미라는 붉은색 담요로 배 부위부터 덮여있으며 주변은 목란꽃이 감싸고 있다.


안내원은 여기서 김일성 미라는 구두를 신고 있는 이유를 “주체혁명 위업이 끝나지 않았고 조국통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도 김일성 어버이 수령님이 우리를 이끌고 계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김일성 미라가 들어있는 유리관은 관람이 끝나면 바닥 밑으로 내려가 보존이 이뤄지며 관람시에만 3층 시신방으로 올라올 수 있게 설치돼 있다. 


유리관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참배 한 후에는 김일성 유품 전시관에 들어선다. 이 곳은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마지막 순서로 김일성이 사용했던 유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김일성의 유품들은 박물관처럼 유리로 막아놓은 상태로 전시돼 있다. 만년필, 옷가지, 김일성 혁명 기록화(畵)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전시실에는 김일성이 업무를 보던 집무실과 함께 김일성이 타고 다녔다는 벤츠 600과 김일성 전용열차 2량도 갖다 놓았다.


 ◆北주민 어떤 생각으로 참배하나?


이 곳을 두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 A씨는 “당시 김일성이 참 불쌍해 보였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들의 잘못된 충성심으로 상품처럼 진열대에 올라가 있다”면서 “탈북자들은 살아있는 김일성은 보지 못하고 죽어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증언했다. 다른 탈북자는 “내가 그 곳에서 본 것은 위대한 수령이 아닌 늙은 시체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추천을 받아 참배하게 됐다. 충성심에 불타는 상태여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새벽 5시에 출발해 점심도 굶은 상태로 대기하다가 오후 3시가 돼서야 겨우 들어갔다”면서 “두 번째 갔을 때도 그와 같은 고생을 해서 세 번째 갈 기회가 생겼을 때는 핑계를 대고 빠졌다”고 말했다.


금수산기념궁전에 가면 꼭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평양에 거주하면서 금수산기념궁전을 6차례 방문했던 탈북자는 “금수산기념궁전에 가면 꼭 우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울지 않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다. 이는 세뇌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지금 너무 상황이 어려우니 김일성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