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신 영도자’의 축구 관람, 좀 이상하지 않나요?

김정일이 김일성대와 평양철도대 간의 축구시합을 관람했다는 북한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자세한 경위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북한 선전매체가 ‘김정일이 대학 팀끼리의 축구경기를 관람할 정도로 여유가 많으며, 따라서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인을 외부세계에 보내려는 의도가 보인다.

또 부시 행정부가 ‘최소치의 대외관계 업적’이라도 남기기 위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하고 돌아온 시점에 맞춰 나온 ‘김정일 대외활동 재개’ 보도는, 북한은 여전히 잘 짜여진 대외선전 전술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내부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금언을 상기해볼 때 북한매체 보도의 1차 목적은 어디까지나 북한 주민들 대상이다. 노동신문, 민주조선,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조선중앙방송 등 거의 모든 매체가 북한 주민들을 1차 대상으로 한다. 대외전용인 평양방송이나 ‘남조선 하수인들’ 대상인 한민전(반제민전) 등은 특수방송이라 주민들이 그 존재를 알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들의 축구경기를 관람하시는 여유있고 건강하신 장군님’을 내보내서, 사는 데 피곤하기 짝이 없는 주민들에게 ‘장군님 활력소’를 넣어주자는 의도가 첫번째인 것 같다. 이른바 ‘체제내부 결속용’이다.

지금 북한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일의 권위가 많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김정일이 도대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 그의 사생활이 어떤지, 아들 딸들은 어디서 뭐하는지, 김정일이 어떤 여자와 사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건강은 어떤지, 제대로 아는 주민들은 없다. 지난 60년 동안 이른바 ‘가계’(家係, 김일성 패밀리)에 대한 비밀은 특급중의 특급 비밀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중앙당 비서들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평백성들이 알겠는가?

최근 김정일 건강이상설을 언급하자, 어느 북한 주민 중에는 “그런 일(김정일의 건강이 나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지금 북한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아직 태반이다. 이들은 “장군님”이 나타나면 환호한다. 말하자면 ‘어디에 계시나요? 그리운 장군님’ 류의 소설적 감정을, 그것이 진실이든, 위선이든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김정일이 60년대 후반부터 구공산권 국가 중에서도 특출한 독재체계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남한에 와 있는 탈북자들이다.

남한에서는 ‘김정일 독재’라고 하면 과거 남한의 군사 독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의 군사독재는 북한의 계급독재-수령독재에 비교하면 ‘독재’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권위주의 정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기 피해를 본 사람들은 ‘그 무슨 망발이냐?’라고 하겠지만,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독재체계에 비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수령주의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김정일만이 ‘사회역사 발전의 유일한 동력(動力)’이며, 자신이 결재한 정책은 바로 법(法)이 되며, 설사 그 정책이 잘못되었다 해도 책임에서 ‘절대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 ‘수령은 무오류의 존재’이기 때문에, 설사 현실에서 잘못이 발생한다 해도 그것은 ‘현실’이 잘못되었을 뿐 ‘수령의 오류’는 아닌 것으로 된다. 또 수령의 존재는 인민대중-당이 현현(顯現)한 존재, 인민대중의 모든 것이 육화(肉化 incarnation)된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구공산주의 수령론의 일반 이론이지만, 김정일이 대중들이 더욱 ‘쉽게 알도록’ 만든 논리는 ‘수령은 뇌수, 당은 심장, 인민은 팔다리’이기 때문에 팔 다리들은 무조건 뇌수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쉽고도 명쾌한 ‘사회유기체설’이다.

북한주민들은 60년대 말부터 그런 기묘한 사회에서 살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에 쉽게 자기 마음을 열지 못한다.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주민의 대응은 매우 ‘모범 답안’이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창조적 ‘분석’이나 ‘해석’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저 위험한 일일 뿐이다.

이 때문에 그 주민의 ‘모범 답안’에 담겨 있는 ‘어두운 기억의 저 편’까지 도달하여 ‘내재적 해석’을 정확히 할 수 있으려면, 미안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최소 4~5년이 걸릴 것이다. 이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남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상식의 수준에서 이해하는 데 최소 4~5년이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 건재하다’는 방송이 우리에게는 ‘분석의 대상’이 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저 ‘아, 지도자 동지가 건재하시구나’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것이 60년 동안 누적된, 도저히 전자계산기로는 계량하기 어려운 ‘선전의 힘’이다.

그러나 이번 조선중앙통신의 ‘김정일 축구 관람’ 보도를 보면서, 뭔가 북한 선전매체의 어설프고 다급한 모습이 발견된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카이사르는 “대중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대중들이 쓰지 않는, 익숙하지 않는 말 또는 행동을 하게 되면 대중과 멀어진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대중이 그 지도자를 어색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 김정일의 축구경기 관람은 군부대 시찰에 비해 북한 주민들에게 너무 어색하다. 필자는 김정일이 진짜 축구경기를 관람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선전'(프로파간다)’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오히려 북한당국이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느냐, 다시 말해 평소에 하던대로 하느냐, 아니면 뭔가 어색하고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어색하고 과장된 것은 치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지 않을 경우 대체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방송에 나온 그대로 ‘위대하신 영도자’의 축구경기 관람, 그래서 더 이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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