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고조 뒤 외교는 北 ’협상패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9일 방북한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에게 밝힌 입장은 ’전제조건’을 단 추가 핵실험 유예와 ’선(先) 6자회담 복귀, 후(後) 미 금융제재 해제’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우선 추가 핵실험 문제와 관련, “미국이 우리를 못살게 굴지 않겠다고 한다면 추가로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단은 추가 핵실험 유보 입장을 통해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대응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위기지수를 잔뜩 높여온데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따라 미국, 중국, 한국 등이 가세한 제재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해 당분간 숨고르기를 하면서 추후 행동에 대한 명분을 쌓아가려는 의도일 수 있다.

여기에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때문에 핵보유와 핵실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언은 그같은 주장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추가핵실험 유예 발언은 역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PSI 등 대북제재가 실제 가동되고 그 수위가 고조될 경우에는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대한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과 강 제1부상의 발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6자회담과 관련해 “미국의 입장이 정 그렇다면 우리가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할테니 미국은 6자회담에 임한 뒤 가까운 시일내 금융제재를 해제하라”는 대목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을 포함한 대북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즉 종전 ’선 금융제재 해제, 후 6자회담 복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선 6자회담 복귀, 후 금융제재 해제’로 바꾼 셈이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 표명이 사실이라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일치하게 6자회담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는데다 이미 긴장을 고조시킨 만큼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한걸음 양보하는 자세를 보여 나름대로의 외교적 노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심지어 북한이 6자회담에 전격 복귀해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할 수도 있다며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위기지수를 높이기 위한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발 양보해 6자회담에 먼저 복귀했는데도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은 채 제재를 지속한다면 북한은 이를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 국제적인 외교전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입장이 여전히 전제조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는 “중국의 강력한 ’위협성 설득’ 등을 감안해 모종의 여지를 남긴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한 복귀의지가 없이 불가능한 요구를 내세워 말장난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양자회담을 갖고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위조화폐 문제 등 불법적 행위에 부과된 벌칙인 금융제재를 해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 해석상의 차이나 전달과정에서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일 수 있다며 발언 자체의 사실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과연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6자회담에 복귀할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마카오 동결자금 해제 전에 먼저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입장을 바꿀 수 있겠느냐”며 “중국이 미국측에 ’북한이 양보하니깐 미국도 양보하라’고 유도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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