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미군의 삶 좇은 ‘푸른 눈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극영화 못지않게 긴장감 있는 클라이맥스와 극적인 굴곡이 있지만 많은 관객이 다큐 영화 보기를 어려워 한다. 정면에서 똑바로 보기 불편한 사회적 사실을 다루다 보니 픽션을 보듯 느긋이 앉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 분단상황에 대해서는 제3자인 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우리도 보지 못한 평양에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댔다. 그는 이미 ‘천리마 축구단’ ‘어떤 나라’ 등 북한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주목을 받은 대니얼 고든 감독. 이번에 그의 ‘북한 다큐멘터리 3부작’ 마지막 편인 ‘푸른 눈의 평양 시민(Crossing the Line)’이 국내 개봉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냉전 구도가 팽팽하던 1960년대 북한에 망명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방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미군 4명의 이야기를 그렸다. 북한을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선이란 한국인에게는 궁금증과 불편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고든 감독은 북한 사회에 가장 잘 적응한 것 같은 한 명을 카메라 앞에 앉히고 끈질기게 그의 생활을 좇으면서 “이 영화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1962년 8월15일 미군 병사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이 DMZ(비무장지대)에서 북으로 넘어간다. 사상 초유의 일인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같은 해 5월 래리 앨런 앱셔가, 이듬해 12월에는 제리 웨인 패리시가 복무지를 이탈해 DMZ를 넘었다.

1965년 1월에는 장교인 찰스 로버트 젱킨스가 무기까지 갖고 북한에 들어간다. 그는 납북 일본인인 소가 히토미와 결혼해 두 딸을 얻었으며 2002년 일본 도쿄로 돌아간 소가와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눈물 어린 재회 장면을 연출하며 전 세계 언론에 등장하게 되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 가운데 드레스녹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어린 시절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드레스녹은 중학교 졸업 학력으로 입대했다. 그는 휴가 중 결혼을 하지만 서독으로 파병된 사이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드레스녹은 남한으로 파병돼 DMZ에 배치받는다. 어느 날 허락 없이 부대 밖으로 외출해 법정에 서게 된 그는 재판을 앞두고 북한으로 넘어간다. 드레스녹은 평양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북한 말을 배우고 사상과 생활을 익히기 시작한다.

그는 다른 미군 망명자들과 함께 영화에도 출연한다. 그가 맡은 역은 주로 미군 악역들로, 영화 속 이름이 별명이 돼 북한 사람들은 그를 ‘아서 선생’이라 부르게 된다.

이 영화는 기획부터 완성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북한이 망명한 미군들의 모습을 쉽게 내보였을리는 없으나 고든은 기존 작품을 통해 얻은 신임을 바탕으로 2004년 4월 드레스녹, 젱킨스와 촬영을 시작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는 듯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로 무장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미군에 투항한 뒤 북한 정부에 비난을 퍼붓는 젱킨스와 평양에 남아 있는 드레스녹의 대립은 눈에 띄게 의도적인 구도로 영화 속에 배치됐다.

그러나 관객은 극적 전개를 따라가다가도 “우리가 촬영에 동원된 영화가 선전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거나 “자기 삶에 만족하는 게 제일 중요해”라는 드레스녹의 증언 앞에서 문득문득 생각에 잠기게 된다. 특히 “조선 사람들은 굶어 죽었지만 나는 매일 800g의 쌀을 배급받았다”는 언급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무엇이 진실인지 의문을 던지고 끝내 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첫선을 보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올해 미국 선댄스영화제에도 출품됐으며 서구 언론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23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