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가야금 명인 정남희 사후 복권

북한 국악계의 원로로 활동하다 숙청된 뒤 사망한 월북 가야금 명인(名人) 정남희 선생이 최근 복권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북한 주간신문 통일신보 최근호(7.30)는 김 위원장의 지시로 지난달 20일 평양에서 정남희 선생의 100회 생일 기념 연주회가 열렸다고 보도함으로써 그의 복권을 시사했다.

신문은 이번 연주회에 대해 “음악예술의 영재이신 김정일 장군님께서 오랜 민족음악 작곡가였던 정남희 선생의 생일 100돌을 잊지 않으시고 마련해주신 화려한 무대였다”고 소개했다.

1905년 7월19일 전남 나주군 다시면에서 출생한 정 선생은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민족음악학부장까지 역임했지만 숙청된 뒤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984년 3월17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북한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김 위원장의 지시로 정 선생의 생일 100돌 기념 연주회가 마련된 것은 사실상 그에 대한 사후 명예회복 조치로 간주된다.

국악인 가문에서 태어난 정 선생은 8세 때부터 가야금 산조의 명인 한덕만(韓德萬) 선생을 사사하고 16세에 전라북도 협률사(協律社)에서 첫 공연을 한 뒤 1940년까지 가야금 산조와 병창, 창극 분야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다.

정 선생은 광복 이전까지 조선성악연구회 이사와 국극사(國劇社) 대표이사 등을 지내다 6.25 당시 월북,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 소속 가야금 독주가로 활동하면서 구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해 여러 차례 공연을 갖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정 선생은 북한에서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공훈배우 칭호를 받은 데 이어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았으며 평양음악무용대학 민족음악학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남한에서는 그를 사사한 김윤덕(金允德.1916∼1978)옹에 의해 정남희제 가야금 산조의 명맥이 이어지다 이대 국악과의 황병기(黃秉冀) 교수가 자신의 가락을 첨가해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산조’를 완성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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