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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과 생사를 모른 채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만큼 커다란 고통이 또 있을까?”
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가 뜨겁다. 항간에는 월드컵이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한반도의 축제 열기도 2002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모두가 축구공 하나로 들떠 있는 요즘, 이맘때면 오히려 가슴이 사무치는 사람이 있다.
매년 6월이면 6.25 전쟁시 북에 끌려간 가족을 두고 있는 납북자 가족들은 전쟁의 아픔을 잊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힌다. 북에 끌려간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56년이라는 세월을 눈물로 지새웠다.
6.25를 이틀 앞두고 만난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이 이사장은 56년 전 헤어진 아버지의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들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함과 간절함을 넘어 한(恨)이 되어버린 지난날을 원망했다.
지금은 아버지뿐 아니라 8만2959명의 전체 납북자 송환을 위해 애쓰고 있는 그는 “6.25전쟁 당시 수만 명의 민간인들이 북한으로 끌려가 고통을 당했다”면서 “남쪽에 남은 가족들의 아픔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며,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이사장은 “올 6월처럼 2002년 6월도 한-일 월드컵 축제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즐길 수 없었다”며 “6월은 가족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달”이라고 했다.
北 전쟁납치 증명 사료집 9월 발간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은 정부에 ‘납북자 송환 및 생사확인을 해달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사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 납북자 가족들은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소홀히 한 무능한 정권”이라고 비판한다.
‘가족협의회’가 만들어지기 전 납북자 가족들은 납북자 관련자료를 정부에 요청해도 이렇다할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 이에 참다못한 가족들은 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2000년부터 전시납북자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 이사장과 회원들은 국회도서관과 국가기록원 등을 출근하다시피 해서 정부가 못하는 전시납북자 관련 자료를 찾아냈다. 국내 자료뿐 아니라 미국의 자료까지 확보한 끝에, 현재 전시 납북자의 수가 8만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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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활동으로 모은 자료와 지난 2002년 발견한 ‘6.25전쟁사변 납치자 명부’를 바탕으로 9월 발간을 목표로 ‘6.25전쟁납북자사료집’을 준비하고 있다. 사료집을 통해 전시납북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적인 문제이며 생사확인과 생존자 송환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 이사장은 “사료집은 전쟁납치를 증명할 있는 중요한 자료”라면서 “사료집이 완성되면 정부를 비롯해 국회 등 정부 기간에 기증해 전시납북자 문제를 사회 각층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가 구체적인 조사를 정부에 제기하면 가만있지 못할 것”이라면서 “사료집 발간을 계기로 전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납북자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 가져야”
가족협의회는 사료집 발간 준비와 동시에 통일부와 전시납북자 실태조사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시납북자 문제는 반세기가 넘었고 방대하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전시납북자 실태조사는 정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데 정부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정부는 전후납북자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전시 납북자 문제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일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은 전후납북자 가족들에게만 해당되며 전시납북자 관련된 일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에 대해 가족협의회는 전시납북자 특별법과 실태조사 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통일부는 ‘준비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전후납북자만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 이사장은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6.25전쟁이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전후납북자 문제만 거론하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함께 납북자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