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기관 파견 北 직원, 주체사상 취약성 목도하게 돼”


▲북한인권정보센터가 12일 개최한 2017 북한인권백서 발간 기념 세미나. 백서를 출판한 NKDB 연구원들과 최대석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박정원 국민대 법학대학 교수, 안윤교 UN 인권관, 백범석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윤여상 북한인권기록소장이 참석했다./사진=데일리NK

북한의 도발 국면 속에서도 우리 정부가 800만 달러가량의 대북인도지원을 결정한 가운데, 탈북민 상당수가 재북 당시 북한에 국제기구 원조 식량이 지원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고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12일 밝혔다. 국제기구의 모니터링에도 불구하고 대북인도지원 물품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북한 당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송한나 NKDB 북한UN권고이행감시기구 연구원은 이날 ‘2017 북한인권백서 발간 기념 세미나’에 참석, “(탈북민) 조사결과 북한에 거주할 당시 북한에 식량이 지원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응답자는 41%에 달했다”면서 “식량원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11%였으며, 어떤 형태로든 원조 식량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4%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원에 따르면, 원조에 대해 알고 있었던 대다수는 아동 관련 기관에 근무했던 종사자이거나 그 가족들인 경우였고 식품 배분도 국제기구의 모니터링 방문에 대비해서만 이뤄졌다. 또한 북한의 아동 단체들이 원조 식품을 획득하기 위해 친인척의 힘을 이용하거나 상급단체에 뇌물을 바치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임산부나 아동에게 공급되기로 했던 국제원조기구의 혼합강화식품이나 영양과자들이 중간 과정에서 유용되거나 시장에서 판매되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송 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 지원되는 의약품은 외무성을 통해 전달되는데, 병원에 도달하기 전 중앙 집중화된 배분체계에 의해 관리자에 의한 착복이 이뤄진다”면서 “이렇게 빼돌려진 의약품은 장마당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말했다.

특히 원조 목적의 의약품이 상업 의약품으로 둔갑해 시장에 넘겨지는 과정은 대체로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을 조성하는 국영무역회사들이 도맡고 있다고 송 연구원은 지적했다. 또한 하부 기관이 약국과 병원에 공급할 의약품을 확보하기 위해 상부 기관에 뇌물을 고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착취한 뇌물이 북한 당국의 통치자금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셈이다.

송 연구원은 “북한은 교전 중이 아님에도 상시적인 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원된 의약품도 도착하자마자 배분되는 게 아니라 상당량이 전시물자로 비축된다”면서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선 다른 수혜국과는 달리 원조 물품을 지역 민간단체가 아닌 당국이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배분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론 대북 인도지원이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간접적인 효과도 있다고 송 연구원은 강조했다. 그는 “원조기관에 파견된 북한 직원은 당국의 선전과 괴리된 실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하게 된다”면서 “북한이 얼마나 국제원조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파악하게 되고 정권의 이념적 근간인 주체사상의 취약성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역설적이게도 북한에 원조를 계속 제공하는 국가들은 미국이나 한국 등 북한 당국이 가장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들”이라면서 “일반 북한 주민들은 원조쌀을 배급받지 못하지만 ‘USA’나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빈 쌀자루의 존재는 ‘제국주의 미제와 굶주리고 있는 남한 동포들’에 관한 북한 당국의 선전 내용에 의구심을 갖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원조기구나 탈북민들의 증언, 그리고 북한 취약계층에 관한 보고서를 종합해볼 때 대북 인도지원의 필요성은 명확하다”면서도 “국제원조기구는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정권과 협력 하에 사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북 원조활동은 양날의 검일 수 있다.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은 원조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北 해외노동자·마약 중독자 보호 절실…해결 의지 없는 北당국 대신 국제사회 나서야”

이날 세미나에선 북한 해외파견 노동자의 인권 실태와 북한 내 마약 실태에 관한 논의도 이뤄졌다. 이승주 NKDB 해외북한인권감시기구 연구원은 “북한 해외노동자는 당국에 수입 일부를 바치고도 현지 관리자들에게 남은 수입을 상납해야 하고, 당국이 내린 방침에 따라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당하는 약자였다”면서 “북한 내부의 주민들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북한 해외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 등의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북한 해외노동자가 북한 내부에 외부세계의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도 주목했다. 이 연구원은 “북한 당국은 해외 노동자가 귀국할 시에도 해외 생활에 대한 정보를 일체 발설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다”면서 “이는 북한 해외 노동자의 경험이 북한 내부로 유입될 때, 북한 사회에 초래할 영향력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외 북한 노동자들이 만들어낼 북한 내부의 변화, 그리고 자신들이 가질 의식의 변화 등에 주목해,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기본적 인권을 위한 ‘선택’을 할수 있는 상황에서 노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임순희 NKDB 북한마약감시기구 연구원은 “마약은 식량난과 의료부족, 공공교육의 붕괴로 인해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돼 버린 북한 주민들을 파고들고 있다”면서 “1990년대부터 2016년까지 탈북민 조사대상자 1383명 중 228명에 해당하는 16.5%가 생산이나 장사, 밀수 등이 아닌 형태로서 마약 접촉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현재 북한 주민들의 마약사용 및 중독 인구는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그 신체나 정신적 피해도 심각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북한 당국은 자체적인 해결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신체, 정신, 가정, 사회, 법률 모든 분야에서 북한 주민들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북한 당국에 의해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임 연구원은 북한 내 마약 실태가 통일 후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우려를 표했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마약사범은 보호예외조항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에서 마약거래는 사용경험이 있는 탈북민은 그 사실을 숨기게 되고,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붕괴된 것만으로 모든 범죄발생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 해당 문제를 마약을 사용한 북한 주민의 잘못으로만 규정지어서도 안 된다”면서 “오히려 탈북민 국내 입국 초기에 마약경험자들을 정확히 파악해 이들이 전문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2007년 이래 매년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해온 NKDB는 2017년 판에 기존 1990년대와 2000년대 상황 분석과 함께 2010년 이후 북한인권 발생사건의 특징을 추가 분석해 담았다. 수록된 피해 정보는 6만 8940건, 인물 4만 932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