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쇼’와 북한 인민들의 잔인한 7월

▲ 김일성 동상 앞에서 오열하는 북한 주민들

“꽃보고 웃겠는가? 배고파 죽겠는데…….”

1994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주민들은 한결 같이 이런 말을 했다.

꽃을 보며 기뻐할 생각일랑 하지말고 한 뙈기의 밭에라도 낟알을 심어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미 그때 북한은 식량난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 주변의 꽃밭은 순식간에 강냉이(옥수수) 밭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꽃밭’이 꼭 필요한 일이 생겨버렸다. 7월 8일 낮 12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날부터 1달 동안 북한 전역은 ‘애도기간’에 들어갔다.

울지 않으면 ‘적대군중’으로 분류한다고 협박

애도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 당조직들에서는 생산을 중지하고 애도 행사에 동원됐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화환이나 꽃바구니를 만들어 김일성의 동상, 사적지, 영생탑(永生塔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씌어진 탑) 등 김정일 가족과 근친들에게 헌화(獻化)하는 일이었다.

북한 주민들 치고 이 행사에 불참하면 배겨날 수 없다. 아니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어찌되었든 자신들이 신처럼 믿고 따르던 김일성이 사망했는데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고 헌화를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당중앙위원회에서는 주민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통제하기에 급급했다. 그것이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안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쥐려고 하는데 누가 청소를 하라고 지시를 하자 오히려 빗자루를 팽개쳐 버리는 심리적 작용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요구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의 산물인 ‘눈물’을 억지로 짜내라는 것이었다. 꽃을 들고 완전히 울어버리라는 것이다. 헌화에 불참한 자, 동상 앞에서 웃는 자는 6.25전쟁 당시 한국군을 도운 치안대 가담자들과 같은 ‘적대군중’으로 분류한다고 위협하면서 말이다. 북한 주민들은 적대군중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대대손손 고립과 멸시 속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

세포비서(노동당 말단 조직단위 책임자)들에게는 소속 당원들 또는 근로단체(청년동맹, 직맹, 농근맹, 여맹) 성원들에 이르기까지 사상동향, 활동정형 등 일거 일동에 대한 평정서(생활 평가서)를 작성하여 상급 당에 올려보내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당 간부들은 한 송이의 꽃을 가져다 바치는 것도 ‘충성심의 표현’이라며 주민들을 들볶았다. 보통의 수준을 넘어 완전히 광분하는 수준이었다.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다

북한의 7월은 꽃피는 계절이 아니다. 게다가 꽃밭은 이미 강냉이 밭, 콩밭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김일성 동상에 꽃을 바치는 일은 그 어떤 이유와 조건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싶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온 산 판을 뒤져서라도 꽃을 꺾어오란다.

▲ 만수대 김일성 동상 앞에 모인 평양 시민들

어린 학생, 노인, 청년, 남녀노소의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맸다. 발이 부르트고 팔꿉치가 벗겨지도록, 입을 악물고 산을 기어올라도 꽃은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았다.

며칠동안 헤매서 겨우 꺾어 온 꽃이란 회귀한 꽃도 아닌 나팔꽃 또는 볼품 없는 이름 모를 야생 꽃 한 두 송였다. 나팔꽃이나 일부 야생화로 꽃바구니를 만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이것도 다행이다. 빈손으로 산에서 내려와 얼굴을 들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꽃을 꺾어왔어도, 빈손으로 돌아왔어도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핀잔은 매한가지다.

반면 간부들이 내놓은 꽃은 희고 붉은 아름다운 꽃들이다. 자신들만이 김정일 장군님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가진 듯하다. 이들은 어디서 이런 꽃을 가져왔던 것일까?

인간 처세술에 능한 당간부들과 안전원, 보위원들은 사서 고생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산과 들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적지 주변이나 가정집들을 빙빙 돌며 꽃을 마련했다.

사적지 주변에는 관리원들이 가꾸는 백도라지(양귀비)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이 있고 가끔 일부 가정집 뜰에는 애지중지 키우는 다알리아 꽃과 같은 관상용 꽃들이 있었던 것이다. 꽃을 가꾸는 주민들도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두 말 할 것 없이 내놓는다.

이것도 권력형 사회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여튼 눈물로 꺾어온 꽃들로 화려한 꽃바구니를 만든다. 이 꽃바구니를 들고 전체 종업원들이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김정일혁명력사 연구실, 김일성의 영생탑 등에 찾아가 꽃바구니를 증정하고 애도를 표한다.

지친 몸에 슬픈 음악…… 자연히 눈물이 나온다

눈물로 만든 꽃바구니를 들고 김일성 동상 앞에 섰을 때 제정신을 가진 사람,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도 있지만 꽃을 구하느라 겪었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육체적 고통 때문에도 눈물이 나온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해도 김일성 동상 앞 광장은 보통 일 천 평 이상이다. 그늘도 없다. 기관, 기업소 종업원들이 단위별로 대열을 지어 자신들의 헌화 순서가 돌아올 때가지 기다린다. 그래서 김일성 동상 앞까지 도달하기까지는 무려 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동안 까딱도 못하고 차렷 자세로 서서 말이다. 쨍쨍 내려 쪼이는 햇볕과 무더위는 땀을 흘리다 못해 탈진을 일으킬 정도로 고달프다.

▲ 동상 앞에 엎드려 우는 사람들

게다가 ‘애도곡(哀悼曲)’의 장엄한 음색은 슬프디 슬픈 주민들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 탈진까지 일으킬 듯한 육체적인 고통과 우울증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슬픈 감정은 강한 의지가 없다면 견디기 어렵다.

연약한 일부 여성들이 현기증으로 쓰러지고 감정에 약한 사람들이 하나 둘 눈물을 홀리기 시작하면 전체 참가자들이 울어버리는 생물학적 조건반사가 일어난다. 그래도 도저히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통곡소리를 내면서 엎드릴 때 잽사게 침을 눈언저리에 발라 눈물을 흘린 척이라도 해야한다.

당 간부들에게 찍히면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아차 하다가는 괘씸죄로 대대손손 불이익을 받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촬영기자들은 이때를 놓칠새라 카메라를 철컥거린다. 이 장면은 수령님을 잃은 슬픔에 북한의 전체 인민들이 우는 쇼의 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행사 후면 질병환자들이 속출한다. 가장 많은 질병은 일사병 환자들과 여성들의 심장질환이다.

이것이 김일성 사후 7월을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의 생활 모습이다.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우상화 정치로 무서운 재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떠오른다.

이주일 논설위원 (평남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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