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납북피해자 지원법

정부가 전후 납북자 가족들에 대한 피해 구제를 담은 법안을 마련해 19일 입법예고하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납북자와 그 가족들은 남북한 체제 경쟁 시대의 산물로 태어난 역사의 희생양이라는 성격이 짙지만 그동안 그들은 피해 보상은 고사하고 반북 정서가 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빨갱이’로 낙인찍혀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1990년대까지는 철저한 사회적 냉대로 관심을 받지 못하던 납북자 가족들은 2000년 이후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은 후에도 ’납북자’라는 용어 자체에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우리 정부의 조심스런 행보로 한(恨)을 풀 기회를 찾지 못했다.

90년대까지 개별 납북자들이 산발적으로 제기해 왔던 납북자 문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관계가 좋아진 뒤 납북자 단체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모처럼 무르익고 있는 남북화해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이슈인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다소 부담이 적은 남북적십자회담 등을 통해 북한에 의견을 개진하는데 그쳤다.

2000년 6월 말 제1차 적십자회담 때 “불행했던 남북관계로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북측 지역에 가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산가족의 귀환사업도 전개하자”며 에둘러 제의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적십자회담이 열릴 때마다 이 문제는 매번 제기됐고 2002년 9월 4차 적십자회담에서는 ’지난 전쟁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들에 대한 생사·주소확인 작업을 협의, 해결한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합의문에 들어가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2002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박근혜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군인의 생사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시 납북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북한은 전후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자진월북만 있을 뿐 납북은 없다’는 논리로 여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활로를 못찾던 납북자 문제 해결의 결정적 전기가 마련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인권위는 2004년 4월 납북자 가족들이 연좌제 등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2002년 12월 제출된 진정서에 대해 인권침해 실태파악과 진상규명특별법 제정 등을 골자로 하는 정책권고를 내렸다.

이후 사회적으로 납북자 가족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 내에서도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작년 6월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특별법 제정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자국민 보호라는 측면을 고려해 행자부가 주도적으로 법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북관계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난 1월 통일부와 행자부가 법안을 공동발의하기로 정리됐다.

이후 통일부 주도로 남북관계와 인권, 법률 전문가 및 정책자문 위원 등의 의견 수렴과 납북자 관련 단체의 면담을 거쳐 본격적인 법안 마련에 들어가 입법예고에까지 이른 것이다.

고령인 납북자 가족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인권위 권고 뒤에도 2년이나 걸린 입법예고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미묘한 남북관계 탓에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정부의 해명이다.

한편 납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도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동안의 소극적인 면모에서는 많이 탈피, 지난 4월 18차 장관급회담에서는 “남과 북은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공동보도문에 명시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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