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힐 방북

21일 성사된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은 북핵 외교가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의 방북이 처음 거론된 것은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년 전이다.

힐 차관보가 주한 미 대사직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귀임한 직후인 2005년 6월22일 주한미대사관 인터넷 카페에 “나는 기꺼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것이며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면서부터다.

미국의 대북협상 의지를 드러낸 원론적 입장이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만나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한반도 정세에 훈풍이 감지되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성사 가능성을 점치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힐 차관보의 방북은 2005년 9월 9.19공동성명이 도출된 직후 최수헌 북한 외무성 부상이 “힐(차관보)의 방북에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핵문제 해결 의도를 가지고 나의 조국을 방문하려 한다면 우리는 항상 그를 환영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가시화되는 듯 했다.

당시 조심스럽던 우리 정부 당국자들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판단함으로써 힐 차관보의 방북은 시간문제로 보였지만 경수로 제공시기를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꼬인 가운데 미국이 영변 원자로의 가동중단을 방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한동안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등으로 자금난이 심해져서인지 북한이 힐 차관보의 방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한은 작년 4월 도쿄 동북아시아협력대화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힐 차관보와의 회동을 제안한 데 이어 한달 여 뒤인 6월1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힐 차관보를 평양으로 공식 초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조건없는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하며 외면했다.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이 주도한 대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채택되는 등 북미관계는 한동안 악화일로였지만 지난 1월 베를린에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이 만나 BDA문제에 대한 해법에 합의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지난 2월 북한의 핵시설 폐쇄 및 불능화와 이에 따른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을 담은 ‘2.13합의’가 도출되자 힐 차관보의 방북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힐 차관보가 6자회담에 참석하거나 관련 협의를 위해 동북아를 찾을 때마다 그의 방북 가능성이 매번 거론됐으며 외교가에는 힐 차관보가 방북해 영변 핵시설 폐쇄 및 봉인 현장을 직접 지켜볼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나왔었다.

그러던 차에 6자회담 진전을 가로막아오던 BDA문제가 지난 19일 최종 해결되자 힐 차관보의 방북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 보였지만 그가 북한이 핵시설 동결 등 2.13합의 이행에 착수하기도 전에 ‘전격’ 방북하리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힐 차관보의 방북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빨리 이뤄진 것같다”면서 “2년 전부터 거론되던 방북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만큼 그의 방북으로 북핵문제의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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