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겪은 개성공단에 다시 한기

남한에는 중소기업의 활로요 북한에는 시장경제의 학습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추진돼온 개성공단은 ‘개척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2001년 별세)의 머리에서 시작됐다.

1989년 평양과 원산 등을 방문해 여러 산업현장을 둘러본 정 명예회장은 당시 북한에 공단을 세워야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북한측과 본격적인 협의는 1999년 10월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단 건설에 원칙적인 합의를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현대측은 해주를, 북측은 신의주를 공단부지로 삼자고 맞서다가 2000년 8월 김정일 위원장과 정 명예회장간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개성지역을 공단부지로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개성은 한민족이 서로 싸워 화해한 도시의 의미만 가지면 안된다”며 “현대화로 영원히 남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남한 정부의 `핵문제 해결 후 개성공단 확대’ 방침에 반발하는 것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같은 달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과 북측 아태평화위 강종훈 서기장은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개성공단이 본격 추진됐다.

그러나 자금난에 부닥친 현대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고 2000년 11월10일 공기업인 한국토지공사가 개성공단 공동시행자로 참여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심각했던 현대의 자금난과 이로 인한 금강산 관광대가의 재조정, 2001년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우여곡절 등으로 인해 개성공단 사업은 뚜렷한 진척을 보지못하다가 2002년 9월에야 50년간 토지이용 등 개성공단 투자환경 조건에 합의할 수 있었다.

북한은 2002년 11월 ‘개성공업지구법’을 발표, 개성공단에 대한 법.제도적 인프라 구축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2년 10월 불거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의 영향으로 개성공단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2003년 6월30일에야 겨우 착공식이 열릴 수 있었다.

착공은 됐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됐고 노무현 정부는 ‘선(先) 법.제도 정비 후(後) 개발’ 입장을 내세워 통행합의서와 토지임차료 등의 문제에 대한 타결이 이뤄진 이후인 2004년 6월 시범단지에 입주할 15개 기업을 선정했다.

공단 가동의 본격화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2004년 6월 6.15 4주년 행사에 참석했던 북한의 리종혁 아태 부위원장은 “우리로서는 개성과 금강산은 군사적으로 예민한 지역을 몽땅 떼 준 것인데 남측이 평택이나 고성 같은 것을 떼 줄 수 있느냐”며 “착공식을 한 후로 2년이 지났지만 오늘까지 흙 한 삽 떠 옮긴 적이 없다”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시범단지 입주기업이 선정된 뒤 개성공단 사업지원단과 관리위원회가 본격 가동을 시작하고 2004년 12월 리빙아트가 ‘통일냄비’라는 이름으로 개성공단의 첫 시제품을 생산해냈다.

2005년 12월 KT가 통신공급을 개시했고 한전은 2006년 12월 10만㎾ 송전선을 연결하는 등 공단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해 나갔다.

2006년 10월에는 시범단지 입주기업 23개가 완전 가동에 들어가면서 북한 근로자 1만명 고용시대를 열었으며 2007년 1월에는 총생산액 1억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시범단지의 가동이 본격화되면서 2005년 8월 1단계 1차분양이 이뤄져 16만9천㎡의 용지에 총 23개 업체와 1개 기관이 분양계약을 체결했으며 2007년 4월말 실시된 1단계 2차 분양은 2.3대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개성공단은 2005년 1천490만달러에 머물렀던 생산액이 2006년 7천373만달러, 2007년 1억8천477만달러로 급증했으며 수출액도 2005년 86만달러, 2006년 1천982만달러, 2007년 3천966만달러로 늘어났다.

하지만 남쪽에서 정권교체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북측이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발하면서 개성공단은 남북 당국간 경색의 찬바람을 맞기 시작했다.

북측은 비핵화 과정과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연계한 김하중 통일부 장관 등의 발언을 문제삼아 지난 3월 개성 현지의 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철수시키고 남쪽의 10.4남북정상선언의 불이행으로 인해 ‘3통문제’가 풀리지 않아 개성공단에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북한은 지난 12일 김영철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남측에 보내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환되지 않을 경우 12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통행을 엄격히 제한.통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결국 24일 구체적인 실행조치들을 남측에 통보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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