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화 반대로 北이 버린 비운의 천재 음악가

‘검은머리의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4대 제자’ ‘차이코프스키 음대 졸업 작품 사상 최초의 만점자’


이 같이 화려한 수사의 주인공은 ‘천재 작곡가’로 불리는 정추다. 하지만 화려한 수사에 비해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를 반대한 ‘반동분자’로, 남한에서는 친일파가 싫어 도망간 ‘월북자’로 사망처리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인이 찍힌 채 평생을 타지인 카자흐스탄에서 보낸 비운의 사나이 정추의 일대기를 그린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시대정신刊)가 지난달 30일 출간됐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과 송홍근 동아일보 기자는 정추와의 만남을 문답식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냈다. 저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민족의 고통과 희망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자 한 정추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일독을 권한다.


책은 정추의 월북부터 카자흐스탄에 정착해 사는 과정까지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의 카자흐스탄 정착기와 함께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고통을 겪은 20만 명의 고려인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정추는 말도 통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타지에서 겪는 고려인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노래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정추의 노력은 ‘1937년 9월 11일 17일 40분 스탈린’ 교향조곡에서 드러났다.


이 노래는 고향을 잃고 타지 생활을 하는 고려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후 정추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민족 음악을 세계화시키겠다”는 의지로 이겨내고 ‘내 조국’이라는 음악을 작곡한다. 


그의 열정적인 음악활동 때문일까. 그는 소련 당국의 요청으로 세계최초 우주비행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곡인 ‘뗏목의 노래’를 연주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으며 카자흐스탄에서는 그를 기리는 음악회가 이따금 열린다. 또한 카자흐스탄 음악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 60여 곡이 수록돼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20년간 채록한 1천여 편의 고려인 노래는 ‘소비에트 시대 고려인들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국사편찬위원회·한양대 한국학 연구소가 공동 출간해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남게 됐다.


더불어 책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풍미한 인물들과 정추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정추의 형 정준채가 당대 최고의 무용수 최승희 공연에 감동받아 훗날 북한에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한 사연, 흐루시초프와 김일성의 면담을 촬영한 사람의 증언, 월북 소설가 이태준이 북한에서 발표한 ‘먼지’라는 소설로 인해 숙청 당한 이유 등 비화들을 쏟아낸다.


정추는 남북이 잃어버리고 살아온,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이다. 민족의 고통과 희망을 부둥켜안고자 한 그의 삶이 궁금하다면,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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