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멘트로 장벽쌓을라 …못판다!

▲ 1991년 발간 북한 화보집에 나온 군사분계선(위)과 남측이 세웠다는 장벽 사진

경상도 합천이 고향인 어떤 억센 대머리 시골 사람이 관운이 있어 나라 원님을 지냈는데, 원님을 그만두고 강원도 어느 산수 좋은 두메산골 절간에서 부부가 귀양살이 겸 도를 닦고 속세로 나온 후, 통장에 29만원을 넣어 놓고 그 이자(?)로 평생을 호의호식하고 큰소리 치면서 잘 살아가는 나라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이 몸도 영광스럽게 태어나 멍청하게 살아가는데, 또 하나의 반 토막 나라에서 무식하고 멍청한 말을 하기에 놀라 자빠질 뻔한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조국의 시멘트로 휴전선을 막아?”

한때 남쪽에서 1백만 호 아파트 건설로 인해 시멘트가 태부족이라, 중국에서 값싼 시멘트를 무질서하게 수입하고 바다모래까지 수입하여 속 썩는 줄 모르고 부실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던 때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한번 시멘트를 수입해 보자,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양을 방문하여 상담을 하니, 마침 수산위원회에 배당된 시멘트 2만 톤이 있다기에 얼씨구나 하고 계약을 했다. 수산위원회에서는 이 시멘트를 팔아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나라에 현금이 없으니 각 기업소나 각 부서에 현물을 배당해주고 자체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정책이다.

가격은 톤당 미화 25 달러. 당시 중국에서는 톤당 26~28달러 정도 할 때다. 조건은 1톤짜리 또는 1.5톤짜리 ‘점보 빽’을 공급해주는 조건이다. ‘점보 빽’은 중국에서 평양 도착가격이 한 개당 운반비 포함하여 1달러20이었다. 그러면 가격은 알맞은 시세였다.

거래조건은 수산위원회가 필요한 어구며 선박 소모품을 일본에서 구매하려고 하니 일본으로 신용장을 열어 달라는 부탁이다.

한국의 시멘트 수입업자와 계약을 하고 일본으로 신용장을 열었다. 중국에 점보 빽도 주문하고 언제쯤 그 빽을 평양으로 보내라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데 약 한달이 지났는데도 깜깜 무소식이다.

판매계약을 한 한국의 시멘트업자가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 진행 사항이 전혀 없다. 답답해서 평양으로 달려갔다. 수산위원회에서는 시멘트는 확보해 놓았으니 안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틀 후에 날벼락 같은 무식한, 말도 아닌 소리를 들었다. 이것 역시 중앙당에서 실력자가 한마디 했다는 거다. 남쪽으로 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이유인 즉 “조국의 시멘트로 휴전선 장벽을 더 튼튼하게 쌓기 위해서 수입하는 것이니 계약을 취소하라!”

상부의 특별지시라 별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야 나 역시 뾰쪽한 묘안이 없다.

상부 지시 “절대 못팔아”

하도 기가 막혀 나는 종이에 ‘조선 지도’를 대충 그려 88올림픽 고속국도를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경상남도 함양까지 진하게 줄을 쫙! 긋고 설명을 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보시오! 전라도 광주에서 경상도 함양까지 꼭 필요한 길도 아닌데. 왜 도로를 아스팔트도 아닌 시멘트로 길을 낸 줄 아십니까? 당시 한국양회협회 회장이 전두환의 처삼촌(?)이었는데(믿거나 말거나), 그 당시 시멘트의 재고가 수출을 하고도 너무 많이 남아,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협회회장이 의논하여 묘안을 낸 것이 광주에서 함양까지, (붉은 색 연필로 굵은 줄을 쫙! 그으면서) 여기에서 여기까지 아스팔트로 길을 내지 말고 시멘트로 고속도로를 내도록 하면 시멘트 소비가 될 게 아니요? 그렇게 해서 시멘트 재고를 소비하고 공장을 계속 돌리도록 하여 시멘트업계를 다시 활발하게 한 실화가 있어요.”

나는 “휴전선 콘크리트 장벽은 박정희 시절에 쌓았는데 지금 왜 또 장벽을 쌓겠나?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암만 그래도 소용없다.

“남조선 건설에 사용하는 데는 절대로 팔 수가 없습니다. 당의 지시입니다.”

아주 강경하다. 말해서 뭐 하겠나. 무식한 X들. 꽉 막힌 X들…

무역이란, 내가 물건을 팔았다가도 필요하면 내가 판 그 물건을 다시 비싼 값으로 되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무역이다! 그래도 소용없다. 쇠귀에 경 읽기지…

어쨌든 대북 시멘트 사업은 이렇게 하여 사람 망신만 사고 말았다. 중국에 1.5톤짜리 시멘트 점보 빽 제조 계약금도 날아가고, 이래저래 나는 1만 여 달러만 손해보고 말았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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