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김 大구라’여 영원하시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은 곱씹어 들어야 그 속뜻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교묘한 말을 새로 만들거나, 했던 말도 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97년 12월 생애 네번째 대통령 선거 출마를 두어달 앞두고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저는 일생에 거짓말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거짓말한 일이 없어요. 거짓말 한 것하고 약속했다가 못 지킨 것하고는 다릅니다”(1997 10. 8. 관훈클럽에서).

DJ의 이 발언은 “거짓말과 약속을 못지킨 것은 다르다”는 유행어를 낳았다. 또 ‘나는 일생에 거짓말을 한 일이 없다’는 이 ‘거대한 거짓말’은 DJ와 거짓말과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기자는 대학(전북대) 시절 운동권이었다. 80년대 민주화 진영에서는 우스갯 소리가 있었다. 말 잘하는 사람을 빗대어 ‘구라’라고 하는데, 세 명의 유명한 ‘구라’가 있었다. 소설가 ‘황구라’가 있었고, 통일운동가 ‘백구라’가 있었다. 같은 민주진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 ‘구라’라는 표현은 일종의 애칭이었다. ‘김대중 슨상님’도 ‘구라’였다. 그런데 황구라, 백구라와 동열에 놓을 수 없다고 하여 ‘김 대(大)구라’로 불렀다.

황구라, 백구라, 김대구라

그런 그가 최근 북한인권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6일 모 대학 초청특강에서 “북한과 같은 공산권이 급한 것은 배고픈 사람이 죽지 않고 먹고 살게 하고, 최소한 전기불이라도 들어오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며 “정치적 인권에 대해 비판하면 (북한은) 더 굳어진다, 그러면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선거권과 민주주의 등 정치적인 인권은 현재로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며 “(북한과 같은 공산권은) 경제가 안 망하려고 개방을 하고, 그래서 세상을 알게 된다, 그때 정치적 인권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냥 들으면 ”정말로’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지금도 DJ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DJ에게 속는지도 모르고 속아 넘어간다. 자신은 절대 DJ에게 속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기자도 옛날에 그랬듯이…

DJ의 주장을 요약하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과 간섭보다는 경제 지원을 통해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면 북한의 인권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김정일을 계속 도와주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개혁개방이 되고 나아가 북한인권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늘 말해오던 논리 그대로다.

그렇다면 햇볕정책 10년 가까이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었지만 북한이 과연 개혁개방으로 나왔으며,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었나 하는 것이다. 그렇게 도와주었지만 개혁개방은 커녕 김정일이 핵실험으로 햇볕정책을 패대기 친 것이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대체 몇 십년을 더 도와주어야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으로 나오며, 나아가 북한 인권이 개선된다는 말인가?

북한 인권 개선은 김정일 정권을 그냥 도와주어서 될 일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김정일 정권에게 압력을 가해야 가능한 것이다. 독재정권에게는 압력을 가해야 인권이 개선된다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역사적 진리다. 북한인권도 마찬가지다. 김정일 정권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고 어떻게 북한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는 말인가.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도 벌써 다섯 차례다. 그러면 유럽연합과 유엔 관계자들이 DJ보다 무식해서 다섯번이나 북한인권결의안을 올렸나?

인권은 문자 그대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다. 그것은 공산권, 자유주의권 등의 사회제도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다. 개혁개방 되면 인권이 개선될 수 있다는 말을 누가 모르는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 정권을 그냥 도와주기만 하면 절대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니, 북한을 개혁개방 시키기 위해서, 북한주민들을 위해서,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을 들고 계속 김정일 정권을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루마니아 작가 엘리 위젤(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은 지난해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하고, 유엔에 북한인권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위젤은 “세계 시민들은 자유를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해 싸울 의무가 있다”며 “북한주민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세계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럼, 엘리 위젤이 DJ보다 더 무식해서 북한인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나?

북한 인민에 죄 짓는다

DJ가 한 말의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DJ는 지금 자신의 햇볕정책이 폐기되고 그 결과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역사에 남지 않게 될까봐 노추(老醜)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DJ의 말 속에 진정으로 북한인민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마음은 단 한 곳에도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그는 인권을 부르짖으며 정치적 억압에 맞선 민주화의 선두주자였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대변자로 각광 받았다. 87년 대선에서 그는 스스로를 사하로프, 바웬사와 더불어 세계 3대 인권 지도자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그래도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난 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뒤 그는 인권을 외면했다. 국민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DJ의 인권관이 변한 것이다.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북한 2천만 인민들을 살리기 위한 것인데, 그는 북한인민들을 외면한 것이다. 급기야 북한인권 문제는 나중에 해도 된다며, 김정일 정권을 계속 도와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인권을 해결할 수 있다며 희한한 궤변까지 늘어놓고 있다. 역시 ‘김 대구라’의 명성은 여전한 것인가.

DJ가 정치적 이유로 국내외 인권운동가들과 한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북한 주민을 도와주는 길이다. 어설픈 ‘햇볕’의 잣대로 국내외 북한인권 단체들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것은 북한인민에 대한 죄악이다.

DJ여, 부탁하노니 이제부터 부디 그 큰 ‘구라’를 닫아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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