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수다의 자유’라도 달라

▲ 함경북도 무산 장마당 풍경<사진:RENK>

얼마 전, 북한문학을 전공하는 여성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에서 여성들의 수다장소는 어디죠? 남한에서는 주로 음식점 같은데 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전화로 몇 시간씩 하든가, 북한 여성들도 수다 떨기가 필요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질문이 아주 흥미 있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북한에서 음식점은 한국에서처럼 일반인들에게 친숙해진 장소가 아니었다. 무엇인가 공적인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딱딱한 곳이었다.

먹기 바쁜 식당에서는 대화 나눌 여유도 없어

우선 국영식당이 영업을 하는 지역이 많지 않은 데다 일단 영업시간이 되면 출납원이 전표(식권)를 나누어 주는 시간은 겨우 한 시간에 불과했다. 영업시간 전부터 식당 문 앞에 몰려 있던 손님들은 문이 열리면 우르르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출납대에 돈을 내고 전표를 받은 사람들은 밀치듯이 식탁을 차지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식탁 옆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좁은 서빙홀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음식 먹는 사람들의 숟가락을 초조하게 살피는데 이런 틈에 음식을 먹는 사람은 먹은 음식이 살로 가지 않는다. 운이 나빠 마지막에 식사 하는 사람은 식당 측으로부터 빨리 나가라는 독촉을 받아야 했다.

북한의 서비스업계에 종사자 하는 사람들은 고객이 왕이 아니라 서비스 업체가 고객의 왕으로 군림한다.

식당의 ‘왕’은 손님 아니라 종업원

이와 같은 북한의 식당 분위기 속에서 여인들이 한가하게 앉아 수다를 부릴 만할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어림없는 노릇이다. 설사 식당 측에서 여자들에게 수다를 벌일 시간을 허락해준다 해도 당장의 먹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그녀들의 긴박한 집안 사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화수다 역시 북한여성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화가 권력 남성의 전유물로 전락해버린 데다 만약 사적인 일로 여성이 전화를 사용하는 경우 주위 사람들로부터 각성이 없거나 나태한 여자로 지목되기 일쑤였다.

수다는 주로 길 위에서

그렇다면 북한 여성들은 어디서 모여 수다를 떨까? 북한 여성 역시 남한여성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수다욕구는 북한여성들이나 남한여성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수다를 나눌 장소를 본능적으로 찾아낸다.

그런 곳은 분위기가 인간적이고 친숙한 곳이라야 한다. 타인에게 구속을 받지 않는 편한 장소라야 한다. 그러면 북한 여성들에게 그런 장소가 있을까?

대표적 장소가 바로 길(路)이다. 가장 가깝기로는 출근길이고 그 다음이 행상길이고 여행길이다.

북한 여성들의 수다는 거의 다 이 길 위에서 진행이 된다. 그만큼 걷는 일이 많고 교통수단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여성들에게 출근길 30분 정도 걷는 일은 예삿일이다. 이때 우연히 마주치는 길손들이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편 친구의 아내, 학교 동창, 여기에 초면인 사람까지 그 우연성은 예측할 수가 없다.

이러한 만남은 계획적인 때보다 부담이 적고 순수하다. 게다가 북한의 도로에는 자동차의 왕래조차 드물다. 이런 주위의 한적한 분위기는 대화의 집중도를 높인다.

식량걱정, 시집살이가 단골메뉴

또 출근버스를 기다리며 버스 줄에 서있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30~40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아니 일찍 버스를 타는 날이 이상할 정도이다. 어떤 때는 두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지루한 시간에 여성들은 서로가 상대의 수다 대상이 된다. 식량걱정, 시집살이의 힘겨움, 고부갈등 등이 주요 대화메뉴다. 최근엔 군대에 보낸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는지 하는 주제가 여자의 수다거리에 덧붙여졌다.

수다가 제일 사심 없이 벌어지는 곳은 행상과 여행길이다. 여기서 만나는 수다대상은 생전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아는 여인을 만났을 때는 서로의 사회적 지위와 입장이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여 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과는 어떤 말을 해도 후환이 없다. 자기가 한 말이 시집 쪽에 전가되거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 보고되어 비판 받을 확률도 줄어든다.

수다의 자유라도 있으면…

그 다음의 수다장소가 여성들의 일터이다. 휴식시간이나 일감이 없는 시간, 또는 일 하는 공간이 때에 따라서 수다장소로 되기도 한다. 이때, 간부들의 비리가 수다거리가 된다. 직장이나 동(洞) 탁아소도 젖먹이는 시간이 되면 자모들의 더 없는 수다장소로 변하는 데 이때 북한사회는 완전히 발가벗겨진다.

최근엔 장마당이 여자들의 좋은 수다장소로 변하고 있다. 여기선 주로 직장에서 돈도 못 타오고 체면상 장사에도 못나서는 백수 남편들이 여자들 수다의 도마 위에서 오른다.

‘여성들의 수다’에서도 남과 북은 이처럼 다르다. 남한 여성들이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수다의 자유’가 북한 여성들에게도 필요하다. 마음껏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의 첫 번째 조건이다. 북한여성들이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최진이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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