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끼리’는 南에서 먼저 쓴 말”

“북한에서 쓰는 ’우리민족끼리’라는 표현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1979년 우리가 대북 제의를 할 때 먼저 쓴 말입니다.”

’남북회담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18일 평화포럼이 주최한 정치ㆍ시민사회 대화 모임에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열린 크고 작은 남북회담의 주역들이 참석해 회고담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의 장본인인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고위급회담은 남측이 북방정책을 통해 동구, 소련과 수교하자 북측이 외교적 고립을 우려해 나왔던 회담”이라며 “북측이 1991년 8월 열자고 제의했던 4차 회담을 소련 내 군부 쿠데타와 이를 통한 공산당 재집권에 대한 기대로 10월로 연기한 것이 이 분석을 뒷받침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위급회담의 중단 이유와 관련해 “표면상 팀 스피리트 훈련 때문이지만 따지고 보면 핵 문제”라며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이 강했고 핵 문제 해결이 없이는 남북대화의 진전은 더 있을 수 없었다”면서 당시 상황이 현재에도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강영훈 전 총리는 고(故)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김 주석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지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보라고 했다”며 “이런 입장을 전달하자 김 주석은 총리회담이 잘되면 차나 한잔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끌었던 토론자는 동 훈 전 통일원 차관으로 그는 손때 묻은 당시 관련 자료까지 들춰가며 1979년 1.19제의와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동 전 차관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는 카터 대통령이 대동북아 정책의 일환으로 북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북한도 중공과 소련을 이용해서 대미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보고 정부는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대북한 접촉을 하고 중국은 북한의 대미.대일 외교를 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북한은 선(先)대미대화 후(後)남북협상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분석이 됐다”며 “그래서 1.19제의를 통해 남북 국장급에서 정상회담까지 열 수 있다고 북측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당시 발트하임 UN 사무총장, 티토 유고 대통령이 남북한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을 뿐 아니라 카터 전 미 대통령도 특사를 했었던 점을 거론하면서 “국제사회는 남북한의 주례역할을 너무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동 전 차관은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한이 오순도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미국이 만들어야 하지만 당시에는 미국이 우리 고개 너머로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신경쓰고 조심했다”며 뒤바뀐 상황을 소개하면서 “오늘 여러가지 비판이 있지만 사실 1.19제의에는 ’우리민족끼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하는 술어가 이미 사용됐다”고 귀띔했다.

참여정부에서 동북아시대 위원장을 역임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남북간 합의한 제도는 좋은데 문제는 실행력”이라면서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 초당적인 대북정책을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한은 고위급회담에서 기본합의서를 만들고도 1차 핵위기로 모든 것이 정지됐고 6.15공동선언도 클린턴 전 대통령 때는 잘되다가 부시 행정부의 강경분위기로 진전이 없다”며 “주변 4강에 대한 협력과 조정, 설득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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