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부터 ‘경수로는 공짜’라 들었다”

▲ ‘선군노선’관철 궐기모임에 참가한 주민들

2003년 12월 신포 경수로 건설 중단 이후 시설관리를 위해 남아있던 57명이 8일 철수하면서 사실상 경수로 건설은 막을 내렸다.

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건설해주기로 했던 100만kw급 경수로 2기 건설은 11년 동안 2조원에 달하는 거액만 날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경수로 건설을 둘러싼 참가국들의 위약금과 피해보상금 문제, 그리고 앞으로 북한의 보상요구에 대응하자면 골치거리다. 북한이 경수로 중단 때문에 수백억 달러의 정치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기자는 최근 사태에 당황해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북한정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주민들은 94년 ‘제네바 합의’가 발표될 때부터 ‘경수로 건설은 공짜’라고 들었다. 북한이 지켜야 할 의무는 없고 원자력 발전소는 공짜로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로지 ‘장군님의 위대’하기 때문에 상납 받는다고 했다.

“장군님 덕분에 발전소, 중유 모두 공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 남한 등은 경수로를 지어주고, 7년 뒤 경수로 주요부품이 들어가는 시점에서 북한은 핵사찰을 받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당시 북한내부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93년 1차 핵위기가 터지고 북한주민들 사이에 “200대의 비행기가 영변을 폭파한다”는 공포감이 팽배했다. 전국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고 전쟁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던 차에 ‘제네바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제네바 합의’는 그야말로 북한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가뭄의 단비’였다. 모든 성과는 김정일의 위대성으로 찬양됐다. 노동당 간부들은 ‘조미 제네바회담과 우리 당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전술 앞에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이 무릎을 끓었다”며 “미국은 매년 중유 50만 톤을 제공하고, 남조선, 일본은 우리나라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강연자들은 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우스개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미국이 남조선과 일본에게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라고 하자 남조선이 70%를 부담한다고 우는 소리를 했는데, 미국이 앞으로 10년 있으면 남북이 통일되어 그때면 원자력 발전소는 너희들 것이 아닌가 하며 남조선에 바가지를 씌웠다는 내용이다. 당시 남조선은 북한 주민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러면서 강연자는 “장군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면 핵무기도 만들고 발전소도 공짜로 생긴다”고 말했다. 북한정권은 애초부터 핵동결이니 핵사찰이니 하는 의무조항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제네바 합의’로 발전소도 얻어내고 시간을 벌면서 핵무기를 더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셈이다.

11년 전 미-북 동상이몽이 지금 현실로

또 북한당국은 중유지원에 대해 “미국이 자꾸 주겠다고 하니까 받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놓으라고 추궁만 하면 된다. 유조선이 커서 항구에 못 들어오면 기름을 다 내릴 때까지 바다에 띄어놓고 부두세 받고, 연체료도 받으면 된다. 미국이 뭐라고 하면 도로 가져 가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미국도 제네바 합의를 어기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했다.

지난 11년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신포에서 땀 흘리며 경수로를 건설하는 동안 북한은 뒷전에서 핵무기 생산을 다그쳤다. 그 결과 2002년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의혹을 불러왔고, 지난해에는 ‘핵보유 선언’까지 했다. 또 지금은 “미국이 핵무기로 공화국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김정일 정권의 속심이다.

북한은 그동안 손해 본 게 없다. 11년이라는 시간을 벌며 핵무기를 보유했고, 신포 지구에 굴지의 원자력발전소 기초를 박은 것만으로도 밑진 게 없다. 더욱이 보상을 빌미로 잡아둔 굴착기, 크레인, 운송수단 등 455억원 상당의 중장비들을 다시 돌려 보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경수로 건설 인력이 최종 철수하는 지금 11년 전 북한당국이 했던 말이 새롭게 떠오른다.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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