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워싱턴’을 제대로 읽고 있나?

▲美 한반도 세미나 참가한 유교수

지난 주 워싱턴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대한 학술회의가 개최되어 모처럼 한국과 미국의 정치인, 학자, 전문가, 관료, 그리고 언론인들이 한데 모였다.

워싱턴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이 워낙 크기 때문인지 짐 리치 미 하원 아태소위 위원장을 비롯하여 6자회담의 대표인 드 트레이니 대사,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지역국장, 에반스 리비에르 국무성 수석부차관보 등 부시 행정부에서 북핵문제를 담당하는 최고 실무자들이 대거 참가하여 주제 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미국의 대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이 그처럼 많다는데 새삼 반갑기도 했고, 그들의 지식과 이해의 수준 역시 매우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놀랍기도 하였다.

미국과 한국은 지난 반세기 이상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미국은 현재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가라는 점에서 한미관계는 우리의 사활적 국가이해가 걸린 중요 문제이다.

미국은 지난 세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 세 번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었다.

한반도 관심, 전문가 숫자만큼이나 많고 체계적

지금부터 꼭 100년 전 미국은 일본과 카츠라-태프트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한반도 점유를 용인하였다. 60년 전 2차대전 종결 시에는 38선을 획정하여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남북분단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로부터 5년 후에는 애치슨 라인을 일방적으로 선포함으로써 6.25 민족상잔의 비극을 방치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당시 미국의 잘못된 결정으로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결정들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과 대한반도 전문가가 전무하였다는 점에서 불가항력적 사건들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동안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이해 정도는 전문가 숫자만큼이나 크게 증대되었고 체계화되었다. 앞으로 미국이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또다시 중요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한반도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에서가 아니라, 높은 관심도와 깊은 이해를 토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 같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당시 그러한 조짐이 일부 드러났었고, 2002년 10월 이후 북핵위기가 다시 전면에 부각되면서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를 모르는 미국으로 인해 식민지 시대의 불행한 역사와 분단과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겪어야 했다. 이제 우리를 너무도 잘 아는 미국이 한반도와 관련하여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수험생의 심정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엔 출제자가 수험생의 실력을 몰랐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면 핑계도 대고 하소연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수험생의 능력을 손금 보듯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변명은 통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모르기는 100년 전이나 오십보 백보

그러나 100년 전이나 60년 전 우리는 미국을 몰랐고 지금도 미국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기는 오십보 백보인 것 같다. 20세기 미국을 모르는 우리에게 우리를 모르는 미국이 정책적 오류를 범했다면 21세기 우리를 아는 미국이, 미국을 모르는 우리 어깨 너머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특정인이 방북 대표로 가는 문제를 놓고 북한측과 밤새워 씨름이나 하고, 실체도 없는 균형자론을 들고 나와 한 달여 동안 지리한 공방만을 일삼았으니 오십 보 백 보 논쟁마저도 무색할 지경이다.

6.25전쟁을 기억하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워싱턴 포스트지의 돈 오버도퍼 기자는 지난 주 워싱턴 회의에도 여지없이 나타나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였다. 78년 필자가 대학원 신입생일 때 고려대 아시아연구소의 초빙연구원으로 한반도문제를 연구하던 존 메릴 국무성 동북아분석국장은 지난 주 회의에서 북한정세에 관한 분석결과를 발표하였다.

연로한 미 의회 조사국의 래리 닉시 박사는 아직도 우리 주미특파원들과 몇 십 분씩 한반도 정세에 관해 전화통화를 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나 지금 우리 시대를 책임진 소위 386세대들은 미국이 우리를 너무도 모르고 있고 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열정과 경륜을 가진 전문가가 우리나라에는 과연 몇 명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물론 워싱턴 세미나 기간 내내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물어 본 질문이기도 하였다.

유호열/ 객원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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