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호로위츠에게 답변할 차례”

각 언론에서 선정한 북한관련 10대 뉴스를 보면 핵문제, 남북관계 경색, 용천참사 등 금년에도 굵직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선정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금년 하반기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고 발효된 북한인권법은 그 상징성과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으뜸가는 사건 중 하나이다. 북한인권법의 제정 배경과 의미는 국내에도 상세히 알려졌고 이미 이에 따른 파급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북한인권법이 제정되기까지 그 중심에 마이클 호로위츠란 미국인이 있었다. 그는 과거 레이건대통령의 국내정책자문위원회의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붕괴 전 對동구권 정책에도 깊이 관여하였고, 미국 기독교계의 역량있는 지도자이며 대외정책과 관련해서 네오콘의 중심 인물이다. 유태인이며 폴란드계 이민 2세인 호로위츠씨는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하여 금년들어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침 필자도 얼마 전 고려대에서 그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잠시 짬을 내어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호로위츠씨의 강연을 듣고 작금의 북한문제와 남북관계에 관한 우리의 시각과 접근 자세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구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북한인권문제에 소홀했던 우리

미국인인 호로위츠씨가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의회를 통해 미국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역설적으로 그동안 우리는 북한인권문제를 과연 얼마나 우리의 시각과 입장에서 접근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철사줄에 코를 꿴 채 북한으로 끌려가는 비극적 사실에도, 북한 장마당에 꽃제비 아이들이 진흙탕에 떨어진 국수조각을 주워먹어도, 정치범 수용소에 수십만 명이 기약없이 강제노역에 죽어가고 있어도, 전체 북한인민들이 눈과 귀와 입이 막힌 채 평양의 장군님 처분만 바라보고 살고 있어도 그것은 북한의 문제라고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그러기에 정부는 매년 수십만 톤의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각종 민간단체는 식량과 의약품을 비롯한 생필품과 건설 자재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생명권으로서의 북한인권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각종 홍보에 열을 올린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게 된다.

동시에 우리 정부는 우리 헌법에 따라 제3국에서 남한으로의 정착을 원하는 탈북자를 전원 수용하고 이들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인민들의 생명권적 인권개선을 위해 각종 경협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북한 당국의 반발과 남북관계의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여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각종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내지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탈북자문제는 북중, 한중관계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조용한 외교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면서 소위 기획탈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부의 입장과 행태를 보면 북한인권문제가 생명권이란 이유로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권리에 대해 외면하고, 북한인권문제가 우리문제라면서도 북한문제나 국제문제로만 간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실질적인 북한인권문제는 외면해 왔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집권당의 직무유기

호로위츠씨는 이러한 우리의 이중적이고 소극적인 인식과 자세에 대해 경종을 울려준 동시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북한인권문제는 북한문제임에 틀림없으나 북한인권문제만큼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사안이 없음을 인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북한에만 맡겨 두거나 인권을 탄압해온 북한 정권를 강화하는데 남북관계가 더 이상 이용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은 호로위츠씨가 예로 든 히틀러정권이나 여타 독재정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했을 때 막연히 북한 인민들에게 먹거리가 흘러들어갈 것이란 기대는 단지 희망사항일 뿐임을 수년간의 식량지원을 통해 알 때도 되었다. 무상이나 다름없는 식량지원을 차관이란 이유로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보다, 차라리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단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인민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일방적 지원형태의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인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리라고 희망하는 것 보다, 북한인민들의 자각을 일깨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남북관계가 정권 대 정권의 관계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북한독재정권의 수명 연장을 위해 수 천, 수 억달러가 뒷거래로 주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인민들에게 밥 한 그릇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과거 군사정권에 목숨걸고 저항했던 현 정부나 집권당 핵심세력들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3국에서 발생하는 탈북자문제는 국제적 사안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우리 헌법에서 북한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규정했더라도 국제법이나 현실 여건에서 북한주민이나 탈북자들을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고 법적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탈북자가 현실적으로 제3국에서 우리 국민으로서 그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을 수 없다고 해서 탈북자가 우리 국민이 아닌 것은 아니다.

탈북자문제나 북한인권문제가 국제문제이면서 우리문제라는 인식을 이제는 거꾸로 해야 될 때이다. 우리 문제인데 조용한 외교만을 고집해서 되겠는지, 우리문제인데 중국이나 북한의 처분만을 기다리면 되겠는지, 우리문제인데 국제사회에서 침묵만 하면 되겠는지 깊이 자성해야 할 문제이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침묵과 방기는 곧 국가의 직무유기이자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북한인권문제를 ‘우리 문제’로 삼아야

미국은 인권의 천부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동시에 미국적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내 정치적 의사결집과정을 통해 북한인권법을 발효,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 역시 보편적 가치기준과 함께 일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2005년도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북한인권문제는 인류 보편적 관심사항이자 국제문제이면서 각국은 자국의 정체성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국의 문제와 결부시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우리는 북한인권문제가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이해관계에 직결되는 우리문제임에도 국제문제로 간주하여 북한인권에 관해 언제까지 방관하고 침묵할 것인가, 언제까지 조용한 외교만을 고수할 것인가, 언제까지 독재정권의 눈치만보고 북한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호로위츠씨는 이 점을 자랑스런 민주화의 희생을 통해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해 온 우리에게 부끄럽게도 통렬히 지적해 주었다.

이제 2005년에는 우리가 호로위츠씨에게 답변해 주어야 한다. 북한인권문제는 북한문제이면서 우리 남북의 문제이고, 국제문제이면서 우리의 문제라고, 먹고사는 문제가 생명권적 인권이라면 자유라는 정치적 권리는 그보다 더 귀중한 천부적 인권이라는 것이 60년 독재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북한인민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고, 그리고 그 북한인권문제를 진정으로 풀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라고 말이다.

유호열 / 객원 칼럼니스트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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