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확언했다. 그런데 그것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것이 문제다. 문 대통령은 담화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라고 했다. <조선반도(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정은뿐만 아니라, 북한 공식문건들, 북한매체들에서 늘 주문하는 단골 메뉴가 된지 오래다. 남한의 미 전략자산을 트집잡는 물귀신 작전이다. 종국에는 주한미군철수까지 걸고넘어지는 수법으로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고 포장한다. 여기서의 평화는 진정 어떤 의미인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습니다”와 그 평화의 결(grain)이 같은가.
2018년, 김정은 수령형상작품(단편소설)에서 김정은의 새로운 지도자상(象)을 만들었다. 바로 ‘평화의 수호자’이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김정은이 ‘사랑과 믿음의 전쟁철학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위대한 대성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평화는 전쟁을 통한 미제국주의 압제에서의 남조선해방을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의 북한주민들은 ‘평화’ 소리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남조선해방을 떠올린다. 이것이 북한식 평화이다.
김정은 정권의 국가목표는 2014년에 공식선언한 ‘백두산 대국’이다. 이때부터 북한인민군을 ‘백두산혁명강군’이라고 불렀다. 김정은은 2015년 백두산에 올라 핵무기를 ‘귀중한 정신적 량식’이라고 하면서 백두산 대국의 완수는 핵무력만이 이룬다고 했다. 그리고 2017년 8월에 ‘백두산 3대장군’ 반열에 올랐다. 11월 29일, <화성-15호>형 발사 후 김정은은 ‘전무후무한 핵무력건설업적을 이룬 지도자’가 되었고 북한은 사회주의강국건설에 특기할 거대한 사변이라고 하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이 2018년 4월 20일 당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2013년 3월, 당중앙위 제6기 제2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했던 <핵·경제병진노선>을 경제건설 총력집중이라는 노선으로 바꾸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천명했지만, 그것은 핵동결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전원회의 결정서의 첫 번째 조항과 네 번째 조항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당의 병진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림계전핵시험과 지하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핵무기와 운반수단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첫번째 조항)
이것은 북한이 핵무기가 완성, 즉 핵 무력이 완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는 엄격히 말하면 북핵 폐기 첫 단추가 아니라 북핵동결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를 대변해주듯이 북한매체는 북핵 관련해서는 북핵포기가 아닌 ‘핵시험 전면중지’를 주구장창 읊어댄다. 동시에 노림수가 많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문한다. 핵 포기라는 단어를 어디 한군데 찾아보기 어렵다.
네 번째 조항에도 북한의 속셈이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핵포기는 ‘NO’라는 것이 방점이다. 핵을 용인해주면 절대로, 깡패국가는 되지 않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김정은이 종착지로 삼는 ‘백두산 대국’은 아직 미완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정상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김정은은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등에 진 핵무기를 내려 놓는다고,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것을… 외부에서의 강력한 충격, 즉 중대 전환점(critical juncture)만이 그 등에서 핵무기를 떼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