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역 참사 1주년] ② 변화한 북한의 위기대응

“룡천역 참사는 북한을 변화로 이끌었다.”

룡천역 참사 1주년(22일)을 맞아 전문가들은 19일 북한이 ’그날의 교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변화된 모습은 지난해 9월 량강도 김형직군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었다는 관측이 제기된 직후 확인됐다. 북한 당국은 일부 언론매체서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제기하며 파문이 확산되자 하루만에 ’상황개요’를 하며 수습에 나섰다.

결국 당시 폭발은 수력발전소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이뤄진 산악 폭파작업으로 확인되면서 한바탕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지만 북한이 외부세계에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모습은 룡천역 참사가 원동력이었다는 분석이다.

룡천역 참사 당시 ’김정일 암살기도설’이 나도는 등 뒤숭숭한 상황에서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결국 이틀만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개략적인 사고 발생 사실만 확인했었다.

이에 앞서 1997년 자강도 희천에서 2천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전해진 열차추락사고나 1천여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2000년 평안남도 양덕군의 열차사고 등에 대해서는 일절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다. 추후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따라서 체제의 불안을 감수하고, 내부의 동정을 외부에 신속하게 알리는 최근의 북한 동향은 ’적극적인 자세가 최선의 대책’임을 확인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룡천역 참사를 계속 숨기고 있었다면 엄청난 피해를 그처럼 신속하게 복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외교전문가들은 룡천역 사고를 통해 북한이 얻은 교훈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선택할 때 큰 혜택을 받게 되지만 고립과 폐쇄를 고집하면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려했던 다른 나라들과 같은 운명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후 북핵 6자회담을 거부하고 여전히 미온적인 자세를 고수하는 것을 볼때 룡천역 참사로 인한 북한의 변화상은 제한적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와함께 룡천역 참사는 북한의 재난구호체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대형 참사를 맞아 재난민 구조나 응급 복구활동, 장기적인 재건계획 수립 등 전반적인 구호대책이 새롭게 개선된 것으로 룡천역 참사 이후 현지에서 활동했던 국제구호단체 전문가들은 전했다.

룡천역 참사 4개월여를 맞아 아이길 소렌슨(Eigil Sorensen) 세계보건기구(WHO) 평양사무소장은 현지 사정을 전하면서 이번 사태로 북한 당국이 체감한 것 가운데 하나로 보건과 의료 인력의 부족과 전력난 등 체계적인 구호지원체제의 구축 필요성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물론 북한의 제한된 역량을 감안할 때 얼마나 재난구호체계가 효율적으로 개선됐는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대형 참사를 맞이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복구에 나서도록 하는 체계화된 시스템이 없이는 ’인민들이 더 크게’ 동요한다는 점만은 인식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룡천역 참사는 ’결국 믿을 것은 동포’라는 인식을 북한체제에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제사회가 함께 북한 지원에 나섰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지원의 힘은 남측에서 비롯됐다. 룡천역 사고 이후 북한과 미국간 긴장이 고조되곤했지만 남북관계가 기본적으로 순항한 것도 룡천역 참사로 확인된 ’동포애’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