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러시아 지도자 인기조사에 왜 레닌이 1등인가?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

1990년대 초는 구소련에서 희망과 낙관이 가득찬 시기였다.

소련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을 모범으로 보고 그들처럼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를 건설하면 모든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들은 1917년 혁명부터 소련 땅에서 벌인 공산주의라는 역사적 실험을 조상들이 잘못 생각한 것으로 보고 공산주의 유산을 빨리 없애버리려고 최선을 다 했다.

소련 매체들은 스탈린이 저지른 대중학살과 테러를 확인하는 자료를 많이 발표했고, 공산주의 정권의 인기는 무너져 갔다. 당시에 ‘스탈린’의 이름은 거의 욕설로 보았다. 소련 시대는 ‘잃어버린 70년’으로 생각되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입을 열지 못하고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러시아의 사정은 많이 바뀌었다. 공산주의 독재의 오류와 범죄를 잘 보여주는 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이 새로운 증거들이 대중의 의식을 더이상 바꾸지 못하고 있다. 주류 매체에서 소련시대에 대한 비판이 많이 줄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시대가 ‘잃어버린 70년’이라기보다 ‘위대한 70년’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려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된다.

2006년에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사회학 연구소인 레바다(Levada)연구소는 국민들의 역사 의식을 조사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20세기의 소련 및 러시아 최고 지도자들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인물은 다름이 아닌 레닌이었다. 레닌을 이어 나온 인물은 KGB 출신인 안드로포프(Andropov, 1914-84)와 소련의 말기를 상징하는 브레즈네프(Brezhnev, 1906-82)였다. 스탈린은 4위였다. 엘친이나 고르바초프처럼 민주화 및 자유화를 체현한 인물은 가장 인기가 낮았다.

또, 2003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고르바초프 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20.4%에 불과했고, 이 개혁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40.6%에 달했다. 반대로, 1917년 혁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은 28.2%였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은 37.4%였다.

구소련 회귀 정서 두 가지 이유

필자는 자주 러시아에 가고 러시아 인터넷을 많이 보는 사람으로서, 이 결과를 별로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러시아에서 구소련 사회주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소련의 과거에 대한 공감이 있다. 이런 분위기를 제일 잘 표시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다. 2005년에 그는 “소련의 붕괴를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가슴이 없고, 소련의 부활을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가 없다”고 말했다.

구소련에 대해 정서적 공감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소련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로 여기는 사람들은 소련사회에 대해 우호적이다. 물론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공감하지 않지만 소련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초강대국이었는데, 그런 나라의 붕괴가 소련/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를 파괴시킨 재앙으로 생각한다.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구소련에 대한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극소수라고는 할 수 없다. 사회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러시아 공산당이 선거 때 10% 정도의 지지율을 획득하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준다.

이런 사람들 일부는 소련시대 때는 비교적 괜찮았으나 지금은 생활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 사회계층 출신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 중 간부 출신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간부 출신은 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해서 자신의 옛날 특권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 확대했다.

현재의 사회적 지위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과거 사회주의 시대 때 특권이 많은 군사공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다. 소련 정부는 군대 사업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했는데, 이들 부문은 머리가 좋은 기술자, 학자들에게 매력이 컸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대규모의 군대가 필요 없기 때문에 그들의 소득도 많이 감소하고 사회적 지위도 떨어졌다.

그러나 소련 붕괴 때문에 고생한 지식인들은 한순간에 1천만 명을 도살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노력한 기술자들만이 아니다. 자본주의로 이행 때 소련에서 국가 예산으로 후원을 받는 기관은 모두 다 심한 타격을 받았다. 학교, 도서관, 연구소 등에 종사한 지식인들은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1985년에 대학 교수의 월급은 중급 당간부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지만 1995년에는 구멍가게 판매원보다 낮은 편이었다. 요즘은 어느 정도 좋아졌지만 교수나 교원들은 아직 1990년대의 고생을 잊지 못해서 1985년 이전 시대를 ‘황금시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구소련 경제의 시장화 과정에서 고생이 많은 계층은 연금을 받고 사는 노인들이다. 소련시대에 그들은 낮은 연금으로 살 수 있었는데 요즘 자식이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노인은 너무 어렵게 산다.

소련시대의 경험을 이념화할 수 있는 경향이 있는 또 하나의 계층은 20대 청년들이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체제의 약점을 모르지만 그들이 살아온 자본주의가 야기한 사회문제를 자기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들에게 소련시대는 ‘전설적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서 생긴 좌파 경향성은 사실 80년대 남한 좌파 학생층과 비슷하다.

러시아에서 이 정도의 반미사상은 처음

그러나 구소련에 대해 공감을 갖는 사람 대부분은 사회주의 경제 때문에 아니라, 잃어버린 초강대국 지위를 아쉬워 한다. 이러한 신흥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현재 러시아의 사회 분위기에 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특성이 반미사상의 강화이다. 필자가 자라난 소련 시대 때의 매체들은 반미선전을 쉼 없이 했지만 그런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70년대 소련 청년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세력을 전략적인 경쟁자로 보았지만 이들 국가와 민족에 대해 적대감이 별로 없었다. 또 록음악이나 영화와 같은 서양 대중문화는 소련에서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

1980년대 들어와 소련 체제에 실망한 젊은이들이 늘어났는데, 그들은 미국을 이념화된 지상낙원으로 소련도 모방해야 할 나라로 보게 되었다. 소련에서의 친미사상은 1990년을 전후하여 절정에 이르렀다. 소련 주민들 가운데 미국을 외교적인 경쟁자나 도전자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소련 사람들은 연방의 붕괴를 정신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초강대국을 잃은 러시아 민족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소련 사람들의 이런 의식의 변화의 기본 이유는 1990년대 소련 사람 대부분은 자본주의가 이식되면 몇 년 이내에 생활 형편이 미국이나 서유럽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향상될 줄 알았다. 그러나 1990년대 소련은 사회혼란과 경제위기가 도래하여 자본주의가 초래할 경제기적을 희망했던 서민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 독일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조건 하에 민족주의는 감정 표출의 형태이다.

국내적으로 이 민족주의의 대상이 된 세력은 소수 민족, 특히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산맥 출신이었다. 그들은 슬라브계와 인종도 다르고 문화 차이도 심하고 조직폭력단체도 많이 참가하여 갈등이 심했다. 또 구소련 가맹 공화국으로 지냈던 이웃 나라에 대한 적대감이 많았다. 세계적으로 키르기스스탄이나 그루지야처럼 소련방의 가맹공화국으로 여겼던 지역은 소련의 식민지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은 이들 지역이 식민지가 아니었고 소련 시대에 러시아의 희생 덕분에 계속 커다란 경제 지원을 받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들 신흥 독립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러시아 사람들은 이들 국가에 대한 적대감이 많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민족주의가 야기한 적대감의 기본 대상은 자연스럽게 미국이다. 필자는 44세인데 평생 동안 이만큼 심한 반미사상을 구소련 시대에 본 적이 없다.

2007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은 미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보고 중국을 제일 우호적인 국가로 생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1990년대 러시아에서 한국에서 일본인들을 ‘왜놈’이라고 하는 것처럼 미국인들에 대한 차별명칭까지 생겼다. 러시아어 역사상 처음이다.

외국 매체들은 이러한 반미사상이 푸틴 대통령에 의해 촉진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푸틴은 이러한 경향을 조성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에 맞게 현존하는 분위기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반미사상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푸틴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다. 국내 정치 무대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선언을 하거나 외교에서 강경노선을 실시하겠다는 약속은 민족주의가 강해지는 투표자들 가운데서 인기가 높다. 러시아는 완벽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드러운 권위주의 나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선거는 정부에 의해 부분적으로만 통제되는데 투표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나 단체들은 정권을 쉽게 유지할 수 있다.

러시아 친북 현상의 배경은 반미 사상

이러한 경향성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5년 쯤부터 러시아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개선하다가 여러 경우에 북한 정권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정책은 이유가 많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을 반대하는 것이 국내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 국내에서도 김정일의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젊었을 때에 소련에서는 북한만큼 인기가 없는 나라가 없었다. 1970년대 소련에서는 북한에 공감하는 세력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소련 민족주의자들은 북한의 자주노선 때문에 反소련 경향의 국가로 보여서 싫어했고, 자유주의자들은 북한을 극단적인 스탈린주의를 체현하는 국가로 보여서 싫어했다. 또 정부와 외무부는 부담스럽지만 믿기 어려운 ‘가짜 동맹국가’로 보여서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러시아어 블로그나 포럼을 많이 보는 필자는 북한에 대한 비판을 하면 이 비판이 ‘미국선전’이나 ‘CIA 공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러시아말로 때때로 글을 쓰는 필자도 ‘미국간첩’이나 ‘미국의 식민지 정권인 남한의 돈으로 북한을 공격하는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받곤 한다.

1990년대 말까지는 러시아에서 이러한 친북 목소리가 거의 안 들렸지만 지금 온라인에서 북한관련 문제를 토론할 때마다 참가자 네 다섯 명 중 적어도 한 명은 이런 입장을 취한다.

그러면 이런 신흥 친북세력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사람들 가운데 북한을 ‘순수 사회주의 국가’로 이념화하는 공산주의자들도 간혹 있지만, 압도적으로 반미 사상이 강한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미국을 반대하는 세력이면 동감 대상이 되고, 이 정부에 대한 비판은 미국을 도와주는 반러 행위로 간주된다.

이러한 경향성은 북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한 사회가 전환되는 것은 진짜 골치가 아파서 갈등과 불만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북한도 예외가 아닐지 모른다. 사회적 혼란이 심하면 어렵게 살던 시대라 해도 잃어버린 안정성 그리고 익숙해진 생활 양식 때문에 구시대가 이념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25년 후에 평양의 어떤 식당에서 맛있는 불고기를 먹으면서 김일성 시대를 연대성과 진실이 가득 찬 시기로 기억할 사람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당장 내일 굶어 죽을지 모르는 시절은 잊어 먹고 경쟁이 없었던 생활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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