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호 납치사건이란

북한과 일본이 11~12일 중국 베이징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회의를 열어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한 재조사와 함께 요도호 관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키로 함으로써 이 사건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사건은 다미야 다카마로(田宮高磨) 등 9명의 일본 적군파(赤軍派)가 1970년 3월30일 도쿄발 후쿠오카행 일본항공(JAL)의 요도호를 공중 납치한 사건으로, 당시 요도호에는 승무원 7명과 승객 등 129명이 타고 있었고 적군파는 기장을 권총으로 위협해 평양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적군파는 자국내 경찰서 습격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범인들은 북한으로 가던 중 3월31일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한 뒤 승무원과 승객을 인질로 잡고 북한까지 안전한 비행 보장을 요구했다.

결국 김포공항에서 범인들은 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山村新治郎) 당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잡고 79시간 만에 북한으로 떠났다.

4월3일 평양으로 들어간 이들은 북한당국에 망명을 요청해 그곳에 눌러 앉았다. 그후 주모자 등 3명이 사망하고 당시 16세였던 한명의 요원은 1988년 일본에 잠입해 지하활동을 벌이다 유일하게 체포돼 형기를 마치고 석방됐다.

또 다른 한명은 2000년 6월 태국에서 달러위조 혐의로 체포되어 일본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현재 북한에는 나머지 4명의 범인과 일본인 처, 20여명의 자식들이 살고있는 것으로 일본 공안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들이 납치범(테러리스트)이므로 인도해 줄 것을 북한에 꾸준히 요구해 왔으나 북한측은 이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2001년부터 북한은 요도호 납치범 가족의 귀국을 허용, 몇차례 귀국이 이뤄지기도 했다.

2004년 5월 2차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요도호 납치범을 일본에 인도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북한은 2004년 7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요도호 문제는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측과 이전의 적군파 구성원들 사이에 직접 협의해서 해결해야 할, 일본사람들 자체의 내부문제”라며 “우리는 그들이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데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적군파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잔류시키는 것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연계된 문제로, 최근 미국은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과 상응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것과 관련해 적군파 요원은 물론 북한에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조치를 촉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은 1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최근 북한과 일본간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회의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재조사하고 요도호 관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키로 했다고 밝혔다.

요도호 납치사건이 38년만에 해결국면으로 접어든 셈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