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뺨, 오른뺨… 北, 남한 길들이기 해부

▲ 31일 면회소 착공식장에서의 현정은 회장

9월 1일부터 금강산 관광객이 절반으로 줄었다. 금강산은 평소 하루 1천여명이 방문했으나 북한이 600명으로 줄이라고 통보해왔다고 지난 29일 현대아산이 밝혔다. 가을 성수기 예약을 받아놓았던 현대아산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이런 조치에 대해 남한의 주요 언론과 전문가들은 오래된 파트너로 상대해왔던 김윤규 현대그룹 부회장을 교체한 것에 대한 북한의 불만 표시이자, ‘현정은 회장 길들이기’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를 숨기지 않겠다는 듯, 31일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에 북측 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이 아예 참석하지 않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현정은 회장이 북측 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할 때는 관례와 다르게 핸드백까지 검사하는 ‘창피’를 주었다.

북한은 또한 2005 을지포커스렌즈(UFL) 훈련에 대해 연일 강도 높은 비난을 계속 하고 있다. 북한의 UFL훈련 비난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므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훈련이 지난 2일에 종료되었는데도, 특히 이례적으로 청와대를 거론하면서까지 비난을 계속하고 있는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혹시 6자회담을 거부하려는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일단은 그냥 ‘길들이기’ 차원으로 보인다. 남한이 향후 UFL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든 말든 자꾸 거론함으로써 ‘위축시키는’ 효과는 거둘 수 있다. 한미간의 의견대립을 유발시킬 수도 있고, 6자회담 테이블에서 대미(對美) 발언력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도 있다. 말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 북한으로서는 손해볼 게 없는 일이다.

이렇듯 북한은 합의된 계획과 일정을 갑자기 일방적으로 변경 ∙ 취소하거나, 상대를 격하하거나, 또는 반대로 지나치게 격상하거나, 남한 내외부의 문제에 시비를 걸어 분열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길들이기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유형별로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길들이기 수법 ① – 일방적인 일정 변경, 취소

북한이 마음대로 회담, 행사, 일정이나 합의사항을 변경, 취소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회되기 사흘 전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회담을 하루 연기한 사건. 당시 북한은 ‘기술적인 사정’ 때문이라고 했으나 대북송금액에 대한 불만, 김일성 시신 참배문제 등이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정 변경에 이어 김정일은 정상회담 중에도 남한 대학의 ‘인공기 게양불허 사건’을 들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북한에 오신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가시라”며 남북관계의 획기적 성과물에 집착하는 DJ를 애태우며 길들이기도 했다.

최근의 사건으로는, 6.15 남북공동행사에 참석하는 대표단의 규모를 축소해달라고 요청한 것. 6.15행사는 바로 며칠 전 개최된 차관급 회담의 합의사항이었는데, 북한은 “미국이 최근 핵문제와 관련 북한체제를 압박 ∙ 비난하는 등 축전개최와 관련 새로운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규모 축소를 요청했다. 남한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 보수단체의 인공기 소각 시위

북한은 2003년 8월에 열린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때에도 개막식 사흘 전에 갑작스레 불참을 선언했다. 그 며칠 전 열렸던 보수단체들의 8.15 시위에서 인공기를 찢고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을 빌미로 삼았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표했고 북한은 7시간만에 다시 ‘참가’로 돌아섰다. 북한은 대회 중에도 보수단체와 북한 기자단의 충돌사건을 이유로 철수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남측의 설득으로 자리를 지켰다.

일정뿐 아니라 장소 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2001년 10월 북한은 6차 장관급 회담을 포함한 남북간 각종 당국회담을 애초에 합의된 서울에 아니라 금강산에서 하자고, 회담개최 보름 전에 제의해 왔다.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남조선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였을 시 남한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고 남한 내 여론이 분분하다가, 결국 며칠 후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2004년 3월에는 경기도 파주가 개최 예정지이던 남북청산결제실무회담을 북한이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개성에서 열자고 제안해왔다. 이유는 당시 대통령 탄핵사태로 인한 남한의 ‘정국불안’ 때문이라는 것. 남한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 달 뒤 파주에서 열렸다.

길들이기 수법 ② – 격하 또는 격상

상대방을 격하하는 방식을 통해 길들이는 최근의 대표적 사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다. 북한은 정동영 장관 취임 후 탈북자 468명의 집단입국 등을 이유로 정장관을 거칠게 비난했다.

사실 일련의 사건은 정장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일들이었지만 “인간추물”이라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임기 중 한 번도 평양 땅을 밟지 못한 통일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정장관을 초기에 길들여 제압하려 한다는 추측이 많았다.

정 장관이 개성공단 내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여 연설을 할 때에는 북측 인사들이 자리에서 떠나는 노골적인 모욕을 주기도 했다. 이번에 현정은 회장이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했을 때에도, 남북간 사전합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좌석을 세번째에 배치해 은근히 모욕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격하했다가, 갑자기 끌어올림으로써 길들이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정장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정장관을 철저히 무시해오던 북한은 올해 6.15 행사를 기점으로 태도를 바꿔 정장관을 띄워주기 시작했으며 6월 16일에는 사전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김정일 앞으로 데려갔다. 감격에 겨웠던 정장관은 남한에 돌아와, 상기된 표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시원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 북한은 김정일과의 면담을 격상과 격하의 기준으로 삼도록 만든다.

 

북한은 이렇게 김정일을 기준으로 하여 격상과 격하의 의미를 보여줌으로써 김정일에 대한 신비감을 조성하고 김정일을 만나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여기게 만든다. 2003년 1월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은 만나주지 않았다. 임동원은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중요한 지방출장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특사가 도착할 것을 알고도 최고지도자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상대를 만나기 싫다는 분명한 의사표현이며 외교적 결례다.

당시 임동원 일행에는 ‘참여정부 통일 외교분야의 실세’로 불리는 이종석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도 끼어 있어서 ‘북한이 남한의 차기 정부에게 곧바로 가깝게 다가가지 않음으로써 길들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이외에도 북한은 2002년 5월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의 방북시 김정일과 예정에 없던 면담 자리를 마련하는 등 ‘깜짝 쇼’를 보여줌으로써 남한 인사들을 길들이고 있다. 방북자들이 김정일을 만나는 것을 내심 기대하게 하고, 김정일과의 면담을 위해 북한의 요구에 순응토록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 방북한 민주노동당도 김정일과의 면담을 기대했다고 한다.

길들이기 수법 ③ – 언론 길들이기

‘격하를 통한 길들이기’ 수법은 남한 언론을 다룰 때도 사용된다. 북한은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그 동안 격하가 아니라 완전히 배제하는 방침을 써왔다. 북한과 조선일보의 대립은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다. 1997년 6월 KBS가 식량난의 참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도하자 조선일보가 ‘김정일 물러나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고, 이에 북한은 ‘조선일보를 폭파하겠다’고 응수했다.

이후 ▲1998년 11월 금강산관광 취재에서 KBS와 조선일보 기자 배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취재에서 일부 매체 배제 주장 ▲2000년 6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시 취재단에 포함된 조선일보 기자의 하선(下船) 거부 ▲2004년 남한 관광, 여행담당 기자를 대상으로 한 금강산 외금강 취재에서 조선일보사 <월간 山> <스포츠조선> 기자에 대한 입북 거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 남한 정부와 언론관련 단체들은 이에 항의했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 동아, 경향일보를 비난하는 <통일신보> 6월 25일자 기사

최근 북한은 남한언론에 대한 공격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6월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보도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외홍보용 선전매체 <통일신보>를 통해 ‘개는 짖어도 통일행렬은 달린다’고 막말을 퍼부었으며, 올해 5월부터는 <연합뉴스>의 특정기사를 이유로 입북 취재를 제한하고 있다.

2002년 2월에 북한은 북측 민화협 등 4대 단체의 명의로 남한 <통일연대> 등 4개 단체에 “조선일보의 명줄을 끊어놓고 조선일보 구독거부 운동을 포함하여 완전히 매장해버리기 위한 투쟁을 보다 강력히 벌이라”는 서한을 보내왔다. 남한에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직접 지시하는 대범함(?)까지 보인 것이다. 당시 북한이 공연 중이었던 대집단체조 ‘아리랑’을 조선일보가 비판한 것을 이유로 삼았다.

길들이기 수법 ④ – 말꼬리 잡아 시비걸기

2003년 3월 북한은 이라크전쟁에 따른 남한의 경계조처를 이유로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경제협력실무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회담 나흘 전이었다.

당시 북한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전군 비상경계령이 내려질 정도로 불안정한 지역(남측)에 갈 수 없다”면서 “이라크 전쟁을 구실로 데프콘 2라는 초경계태세를 선포해 나선 것은 온 겨레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경계조처에 북한이 흥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특히 당시 남한에는 ‘데프콘 2’가 발령되지도 않았다. 국군의 방어준비태세는 평시상태인 ‘데프콘 4’였다. 경계태세인 ‘워치콘’도 1999년 6월 서해교전 이후 내내 ‘3’의 상태였다. 다만 당시 남한의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 없이 “한 단계 높였다”고 실언(失言)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국방부, 통일부에서 공식적으로 해명을 했음에도 북한은 회담연기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애초에 데프콘 2든, 3이나 4든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회담을 하기 싫어 뭔가 하나 걸려들기만을 기다렸던 차에,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당시 남한은 이라크전쟁 문제로 반미시위가 들끓던 중이었다. 북한은 여기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고 싶었을 것이며, 회담을 연기하면서 그 배경을 ‘이라크전쟁 때문’이라고 하여 이라크 전쟁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2000년 12월 북한은 당시 대한적십자사 장충식 총재를 자리에서 밀어냈다. 장총재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당시 장총재는 정부와 협의하여 북측의 태도에 대한 유감서한을 비공개리에 보냈는데, 북한은 이것을 공개해버리는 비열함까지 보였다. 결국 장총재는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서 사퇴해 대한적십자사의 역대 최단명(5개월) 총재로 기록됐다.

 

▲ 문제의 발단이 된, 금강산에 새겨진 자연바위 글발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

 

지난해 4월 제9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남한 통일부의 직원이 북측 관계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금강산 치마바위에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 문구 가운데 ‘천출’이 ‘천출(天出)이 아닌 ‘천출(賤出)’로 오해될 수 있다는 농담을 했다가 행사가 중단된 사건이 있었다. 남측에서 공식 사과를 하고 나서야 행사가 재개되었고, 이후 해당 직원은 엄중 경고를 받고 전보조치 됐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남한의 정치인이나 주요 인사들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심지어 농담을 하는 것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되었다. 잘못했다가 북한이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르고, 반동으로 찍히거나 방북을 거부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남한에 대해 공식매체를 통해 온갖 막말을 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하면서, 정작 북한은 남한의 크고 작은 문제에 다 간섭하고 영향을 미치려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 한총련 합법화를 줄곧 주장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번에는 현대그룹의 인사문제까지 시비를 거는 중이다.

이렇게 지난 5년 동안 남한은 북한에 충실히 ‘길들여지는’ 중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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