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前대통령서거> 외환 위기 재임 중 해결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외환위기 당시 취임해 뚝심으로 국가 부도 위기를 해결해 경제 분야에서도 성공한 통치자로 평가된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당시 단행한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권 건전화는 작년 9월 전 세계에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한국이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민주적 시장경제 원리’는 한국 사회가 자율 경쟁과 시장 경제로 진화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 민주적 시장경제 원리 전도사
김 전 대통령의 경제관과 경제철학은 ‘민주적 시장경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경제지침서 ‘대중 경제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경제는 전적으로 시장 논리에 맡겨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되 실질적인 생산력인 노동자의 지혜와 능력을 치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경제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일반화됐던 개발독재 시대에 그의 자유시장경제론은 반체제적이고 반정부적인 발상에 기초한 것으로 여겨져, ‘대중 경제론’은 지난 1980년대 초까지 금서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는 당면한 경제위기를 ‘시장경제 논리와 공정경쟁 원리의 실종’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지양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경제운용에 따른 폐해와 비효율성을 제거하려면 경제정책을 민간주도형으로 펴나가야 하며 이를 통해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하고 소득재분배를 실현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철학 아래 경제 정책을 운용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경제 정책 입안에 참여했던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관 주도의 개발 논리에 익숙해져 있던 공무원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자율시장 경제 정책은 다소 생경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외환위기 재임 기간 해결
김 전 대통령은 외환 위기로 인해 1997년 말 39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를 재임 마지막 해인 2002년 말 1천214억달러로 늘림으로써 국가부도 위기를 해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평가하는 국가신용등급도 A등급을 회복했다.

1998년 -6.7%에 달했던 경제성장률도 1999년 10.9%, 2000년 9.3%, 2001년 3%, 2002년 6%로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1998년 6.8%로 최고조에 달했던 실업률도 1999년 6.5%, 2000년 4.1%, 2001년 3.7%, 2002년 2.5%로 해마다 떨어졌다.

또 기업.금융.공공.노동 등 4대부문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1997년 396.3%에 달했던 기업부채비율이 2002년에 135.6%까지 낮아졌으며 재임 5년간 무역수지 흑자 누적액도 949억달러에 달했다.

특히 IT 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1997년 7.7%에서 연평균 20%씩 성장, 2001년엔 15.6%까지 늘어나 IT강국으로서의 면모도 갖췄다.

2002년 말 초고속인터넷 가입이 1천27만가구, 인구 100명당 17.2명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단연 1위인 것도 IT강국의 위상이 허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또한 1만1천125건에 달하는 규제중 절반이 넘는 6천60건을 폐기하고 3천166건을 개선해 대내외적으로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 임기 5년간 611억달러에 달하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했다.

이와 함께 국토의 균형있는 개발체계 구축을 위해 국토기본법 등 관련법을 정비, ‘선계획-후개발’ 원칙을 확립한데 이어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계획 확정 등 지역균형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2001년말 391억달러에 달하던 단기외채가 2002년엔 477억달러(6월), 529억달러(12월)로 급증하는 등 외환시장의 완전한 건전화에는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총 157조원의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민부담 가중에 따른 논란이 일었고, 2002년까지 총 631개 부실 금융기관이 합병, 계약이전, 파산으로 정리되면서 대량 실업의 고통이 수반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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