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이건영 씨(가명·사진)의 고향은 함경북도의 어느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생각 많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는 항상 궁금증이 있었다. ‘바깥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이곳이 살기 좋은 나라일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런 궁금증은 자연히 외부 세계에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절친한 친구에게 “바깥세상 모습을 보고 싶다”고 슬쩍 말했고, 친구 역시 호기심이 일었던지 그에 동조했다. 몇 년이 지나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 한 번 나가보지 않을래?” 그렇게 장난처럼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에 발을 디디게 됐다.
운이 좋았던지 이 씨와 친구는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나 먹을거리를 얻고 이동 방법도 알 수 있었다. 중국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기회를 엿보던 친구가 먼저 한국에 입국하고, 다시 친구와 연락이 닿아 이 씨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는데, 순간 ‘혹시 여기가 북한 아닌가’ 의심이 들었어요. 그만큼 긴장되고 걱정이 컸지요. 그런데 환하게 불 밝은 서울의 야경을 보고 안심을 했죠. 드디어 왔구나, 안도감이 들었어요”라고 회고했다.
공부로 전문성을 쌓는 것이 성공적인 정착의 지름길
하나원을 나와서 본격적인 한국 생활이 시작됐다. 주위에서는 어서 빨리 직장을 구해 돈벌이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어느 정도 이곳에서 생활해보고 진로를 찾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곳 문화도 잘 모르고 생활하는 것도 생소한데, 무턱대고 직장을 찾는다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일까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바로 공부다. 이 씨는 “‘차라리 기술을 배우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게 됐죠. 그래서 서둘러 대학 기계과에 입학했어요. 기계 가공은 북한에서도 몇 년 일한 경험이 있고, 또 공부도 기계 분야를 배웠었으니까요”라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술은 북한과 수준 차이가 크게 났고, 게다가 상당한 부분이 컴퓨터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좋은 기술이라고 배운 것도 한국에서는 이미 예전의 기술이었고, 결 국 다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그는 “당시에는 ‘한국 사람들은 컴퓨터 가공에 익숙해져서 손으로 가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기계가공의 개념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이곳에 맞게 컴퓨터 사용하는 방법만 배우면 더 완벽한 기술자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긍정적 마음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이 씨는 그런 생각으로 컴퓨터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종종 언어문제로 막히기도 했지만, 독학을 통해 대략적인 이해가 있었기에 기술 습득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남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고, 그런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현재의 부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졸업 후 몇 년간 반도체 회사에 취직해 근무하다가, 2006년 초정밀부품가공 업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정부기관으로부터 벤처기업 인증을 받게 되고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앞서갈 수 없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한 점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서 손을 놓아서는 안돼
현재 1남 1녀의 자녀와 아내가 있는 가장으로, 초정밀부품가공의 국산화를 이끄는 기업의 대표로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고 있는 이 씨. 이제는 가장으로서 기업 대표로서 역할을 하며 어느 정도 여유의 시간을 가질 법도 한데, 그는 ‘대학생’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기계 분야의 특성 때문에 일본어 공부를 해야 했던 그는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등록했다. 비단 일본어뿐 아니라 다른 필요한 공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국내 박사 과정까지 하고 싶다는 그는 “내가 아무리 천하를 옮길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지식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많은 분들이 한국에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본다. 사실 저마다의 사정이 다르기에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충분히 고민하며 결정해야 한다. 생활하면서 속상할 일이 많을 것이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이나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에게 의지하고픈 생각도 들겠지만, 정착이라는 것은 누구의 지원 없이 자기 힘으로 살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정착이라 말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 정착해 2년 이상 지났다면 집에서 나와 무엇이든 혼자서 해볼 것을 적극 권한다. 정착에 대한 꿈을 품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의 대표로, 또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가장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 씨. 그의 현재 모습에서 행복이 곁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