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복원..향후 전망은

“한때 절망감도 있었지만 이제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 한 달째를 맞아 북핵 문제를 다루는 정부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외교력의 복원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줬지만 이제는 차분하게 사태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외교적 노력= 유엔 안보리는 북한 핵실험 강행 엿새만인 지난달 15일 대북 결의 1718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의 핵실험을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군사조치 가능성은 배제했지만 강력한 경제적.외교적 제재를 가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안보리 결의를 주도한 미국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6일 한.중.일 순방계획을 공개했다. 북핵 문제의 직접 당사국들로부터 대북 압박전선에 참여하는 모습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졌다.

국제사회의 긴박한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그 순간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본격화됐다.

핵실험 강행 사실을 미국.일본과 동시에 파악한 정부는 9일 당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정부는 물론 북한에 대한 강력한 비난 메시지를 감추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한국 정부도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강조했다. 북핵 사태가 어떤 경우에서든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사실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핵실험 이전부터 진행돼왔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그 것이다.

이 방안은 9월14일 한미정상회담 전 우리 측 반기문 외교장관과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 미 측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의 2+2 회동을 통해 조율된 뒤 정상회담을 통해 공식 선포됐다.

지난해 채택된 9.19 공동성명의 단계적 이행조치 가운데 일부 내용과 이른바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와 연관된 일부 조치를 결합시켜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방안의 골자로 알려진다.

하지만 접근방안의 구체적 내용도 채워지기 전인 10월3일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서둘러 포괄적 접근방안의 구체적 내용을 담아 미국 측에 설명했고 다시 이를 중국에 제안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중국에 전달한 시점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바로 10월 9일이었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유엔의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도 정부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노 대통령이 직접 움직였다. 노 대통령은 10월13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포괄적 접근방안을 다시 한번 중국 측에 전했다.

그리고 6일 뒤인 10월19일 중국은 평양으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을 보냈다.

큰 성과가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탕 국무위원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 내용은 ‘미국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면 핵실험을 추가로 하지 않겠다’는 것과 ‘먼저 6자회담에 들어가겠다. 대신 우리가 들어가면 가까운 시일내에 금융제재를 풀어라’는 것으로 요약됐다.

특히 북한의 대미협상을 실무적으로 지휘하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별도로 나서 브리핑까지 하면서 북한의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미국은 냉담했다. 라이스 장관은 “새로운 게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다가오는 중간선거로 인해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모종의 타협을 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북한 설득에 주력한 중국과 긴밀히 협의했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지난달 31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북.미.중 비밀회동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베이징 회동에서 소외됐다고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포괄적 접근방안을 통한 지속적인 대북 설득 노력이 밑거름이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BDA 문제와 관련해 ‘양보는 없다’고 버티던 미국 측의 강경입장을 꾸준히 파고들어 ‘논의할 수 있는 문제’로 만들어낸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내용성있는 설득방안과 미국의 `모종의 성의’가 주효했던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압박이 예상외로 거셌기 때문인지, 혹은 이들 요인이 잘 맞물려 떨어진 결과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 향후 전망은 = 일단 6자회담 재개라는 새로운 국면 연출에는 성공했지만 실질적으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설계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문제는 역시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며, 관건은 이를 위해 외교적 노력이 얼마나 효과있게 전개되느냐다.

북한은 기회있을 때마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북한에 줘야할 ‘선물보따리’는 간단치 않다. 그리고 이를 연결해줄 외교방정식도 쉽지 만은 않다.

만일 북한이 핵포기 결단을 내릴 경우 지난해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기대됐던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체제 유지를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이미 12년전 채택된 제네바 합의가 휴지조각이 된 것도 따지고보면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지 못한 탓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 핵은 마지막 남은 자산에 해당되는데 이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체제보장이 약속돼야 함은 물론이고 북한의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보상’이 있어야할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이미 핵실험까지 한 상황이다. 따라서 `핵보유국’으로서 더 큰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핵보유 문제와 관련, 정부 당국자들은 매우 강경하다.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겠다는 것은 당연히 지난해 11월 상황(6자회담 5단계 1차회의)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하는 북한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간의 입장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핵폐기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베이징 합의는 물론 앞으로 재개될 6자회담도 일시적인 휴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북한의 운명과도 같은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외교적 노력은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