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인수위에 ‘北核폐기 로드맵’ 제시했다는데…

▲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외교부 공직자들 ⓒ연합

외교통상부는 북핵폐기 시한과 관련, 2010년까지 마무리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를 오는 3월까지 완료하고 상반기중 핵폐기 일정에 합의해, 2010년까지 핵폐기를 마무리한다는 ‘한반도 비핵화 추진계획’을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간표는 지난해 북핵 6자회담 ‘2.13 합의’와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한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작년 연말까지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와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를 완료해 임기내 북핵폐기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이후 이들 시설에 대한 불능화 작업이 11월 5일 착수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북핵폐기 로드맵은 탄력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확산 의혹’이라는 예견된 장애물에 막혀 북핵 신고는 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부시 대통령은 임기중 처음으로 김정일에 “친애하는 국방위원장께(Dear Mr. Chariman)”라는 호칭으로 친서를 보내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를 촉구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북한이 이처럼 북핵 6자회담 ‘10.3 합의’에 명시된 북핵 불능화와 신고 시한을 지키지 않음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2단계 로드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태다. 2단계 로드맵이 완료돼야 북핵 폐기로 들어가는 3단계로의 진전이 가능하다.

외교부의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북핵폐기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다는 원칙 하에 핵시설 불능화가 완료되는 오는 3월 말까지 신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 때문에 이와 관련, 미 행정부와 조율이 있었는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앞서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0일 한국을 방문한 후 베이징(北京)으로 떠나면서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비핵화 2단계를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혀 북핵 신고 관련 새로운 시한이 설정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물론 미국은 이에 대해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11일(현지시각) “미국을 비롯한 어떤 6자회담 당사국도 새로운 시한을 설정하지는 않았다”며 “북한의 핵신고에는 하나의 시한이 있을 뿐이며, 그건 작년 12월 31일이고, 북한을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외교부가 북핵 신고 시한을 3월로 설정한 것은 영변 5MW원자로에서 제거하고 있는 핵연료봉 인출 작업이 3월께에나 완료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핵 폐기도 불능화 작업이 완료돼야 가능한 만큼 그 안에 신고가 완료되면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또, 올해 상반기 중 핵폐기 일정에 합의하고 핵폐기 단계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지금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협상도 이때 시작된다.

이어 핵폐기 일정에 따라 2010년까지 플루토늄을 비롯한 핵물질과 핵폭발장치(핵무기)를 해외에 반출하는 등 핵폐기를 마무리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인수위에 보고했다.

하지만 북핵 폐기는 외부의 요인보다 북한 내부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데 있어 ‘경제적 지원’이나 ‘미북 관계 개선’만으로는 추동력이 부족하다는 것.

한 북핵 외교 전문가는 “일각에서는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많이 해주거나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북한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의 ‘선군정치’는 곧 핵을 가진 군사강국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경제적 보상이나 미북 관계 개선이 나라의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김정일 정권에게는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핵포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핵 폐기에 있어 북한 자체가 가장 큰 변수이자 리스크이지만, 한반도 주변 정세 또한 돌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늘 열려있다. 일단 북핵 신고 지연에 따라 미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방향 선회도 가능한 대목이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0년 안에 3000달러가 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북핵폐기 로드맵의 진전 여부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북 지원에 나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핵 프로그램 신고-핵시설 폐기 절차 개시-폐기 완료 등 핵 폐기 단계를 3단계로 세분화해 단계별로 대북지원 속도를 엄격히 관리하겠다 것이다.

때문에 외교부가 인수위에 보고한 ‘한반도 비핵화 추진계획’도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을 염두에 두고 인위적으로 짜맞춘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물론 북핵폐기가 2010년에 완료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구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대북전략을 완전 새롭게 짜야하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행동을 전제로한 지원 계획뿐만 아니라 반대의 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