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장관급 회담’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남북 당국자 간 실무회담이 18일 하루간의 정회(停會)에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북한 대표단은 질기게 나왔다. ‘비료만 챙겨오라’는 지시를 받고 왔을 터이니 자기들로서도 그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을 것이다.

남과 북이 지금까지 합의한 사항은 ‘비료지원’뿐이다. 사실 이것은 회담을 할 필요도 없이 전화 한 통화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개성에서 회담을 한 것은 어떻게든 대화의 통로를 마련해보려는 남한 정부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그런 점에서는 남한의 체면을 세워준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당신들 체면을 세워주는 것은 회담 자체로 충분하다’는 듯 일체의 양보를 하지 않았다. 남한은 현물지원을 해주고도 상대에게 쩔쩔매는 이상한 꼴이 되었다.

북한의 ‘정동영 길들이기’

남한 정부가 매달리는 것은 ‘장관급 회담’과 ‘6.15 공동선언 5주년 방북단’이다. ‘장관급 회담’을 6월 중에, 그것도 확실하게 날짜를 못박아 개최하기를 바란다.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남측 대표단이 방북하는 것에는 남북이 뜻을 같이하는데, 남한은 그것이 ‘장관급’이 되길 바란다. 전자든 후자든 공히 ‘장관’이 걸려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걸려 있다.

북한은 탈북자 468명의 집단입국, 김일성 조문 방북 불허, 북핵문제와 관련된 발언, 미국 방문 등의 이유로 정 장관을 집중 비난하며 남북관계를 중단했다. ‘비난’이라기보다는 시정잡배들이나 사용할 만한 ‘막말’을 공식매체를 통해 퍼부었다. 심지어 정 장관이 개성공단 내 ‘리빙아트’ 준공식에 참석하여 연설을 할 때에는 북측 인사들이 자리에서 떠나는 모욕을 주기도 했다.

북핵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북한은 일단 남북관계를 소강국면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역대 통일부 장관에 비추어볼 때 북한이 정 장관을 대하는 태도는 좀 지나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북한이 남한의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정 장관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았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동안 정 장관은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계속해 왔다. 그런 마당에 남북회담이 재개됐다. 10개월만이다.

정 장관 방북 집착할 이유 없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한 정부가 왜 그렇게 정 장관의 방북에 집착하느냐 하는 것이다. 말 뒤집고 태도 바꾸는 것을 북한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긴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 동안의 막말을 거두고 정 장관의 방북을 받아들이기엔 북한 스스로도 쑥스러울 것이다. 북한은 “임기 중 한 번도 평양 땅을 밟지 못한 통일부 장관이 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평양이 무슨 성지(聖地)라도 되는가. 안 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대단히 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북 간의 대화통로를 유지하려는 남한 정부의 태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북한에 가서 장관이 이야기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비핵화공동선언 이행하라”,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의 연설문을 읽고, 북한이 거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면 “북한이 우리 말을 경청해 주었다”는 식으로 자찬하는 회담을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가.

실질적인 이득에 주력하는 게 원칙

이번에 북한이 크게 양보한다면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 방북단을 장관급으로 하여 정 장관의 방북을 허가(?)하는 것이고, 차선으로 양보한다면 6월 중 서울에서 열리는 장관급 회담의 날짜를 정확히 합의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전자라고 해도 실익이 없고, 후자라면 남한은 이번 회담에서 완전히 ‘물먹은’ 꼴이 된다.

이번 회담의 공동보도문에 북핵문제에 대한 내용이 들어간다고 하자.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만약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한다면 남한 정부는 대단한 성과인 양 자랑하겠지만, 그것은 이미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합의했던 사항이 아닌가. 이것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배반한 것에 대해 강력히 따질 생각은 않고, 그것을 재확인한 것이 성과라는 꼴이 될 테니 이런 우스운 꼴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체제에 혼선을 초래하고 ‘말 잔치’나 잔뜩하면서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놀아날 장관급 회담이나 방북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차라리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라. 이산가족상봉이나 납북자, 국군포로 귀환과 같이, 단 몇 사람의 막힌 가슴이라도 뻥 뚫어줄 수 있는 사안을 들고 집요하게 요구하라. 그런 것 안 해주면 비료 못 준다고 버텨라.

우리가 남한 정부에 바라는 것은 이런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것이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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