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임수경 왔다!” 평양 인산인해

▲ 89년 평양축전 참가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임수경을 고려호텔 식당에서 만났다

평양시내는 전국 각 지방에서 동원된 승용차로 시내를 장식했다. 차도 가지각색 번호판도 가지각색이다. 지방별로 조금씩 다른 차 번호판이 촌스럽지만 그런대로 이색적이다.

대부분의 차는 임시 번호판으로 운행을 하고 모처럼 평양시내가 번화한 모습의 화려함을 보여준 유일한 시기인 것 같다. 번호가 없는 차도, 종이나 함지판(나무로 짜서 만든 판)으로 써서 다니는 차도 제법 보였다.

임수경은 제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하기위해 남한정부 몰래 일본, 서베를린, 동베를린을 거쳐 1989년 6월30일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임수경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양은 화창한 일기에 소나기가 잠깐 지나간 후 고려호텔 주변 길은 교통 통제가 됐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성공리에 마쳤다. 특히 러시아 선수가 대거 참가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오기가 발동한 북한이 세계 공산권 청년학생들의 축제를 유치한 것이다. 올림픽 버금가는 세계적 대행사로서 엄청난 돈을 들여 개최하게 되었다.

미주지역에서는 캐나다를 포함해 항공권은 본인 부담, 북한에서는 숙식과 제반 편의를 제공했다. 재미 교포들 중 북한에서 특별 선별한 26명을 초청했다. 이중 미국 서북부에서는 12명이 선발초청 되었다.

▲ 임수경 오던 날 호텔앞 사진

우리일행 12명은 북한이 유일하게 외부인에게 자신있게 자랑하는 상원 시멘트 공장을 방문하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약간 못된 시간이었다. 고려호텔 앞길 양쪽은 완전하게 교통이 차단된 채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나는 남한 전대협 대표가 공항에 도착하여 지금 호텔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동방송 차의 스피커에서는 공항에서부터 현황을 수시로 방송했다. 환영을 나온 인파들은 손에 꽃을 들고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임수경을 보기위해 자리다툼을 벌였다.

독일에서 8명이 오는데 그중 한 사람이 전대협 대표로 온 여학생이라는 소식이 방송으로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언제 도착할지 몰라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갈 수도 없다. 화장실도 갈 수가 없다.

땡볕에서 막연히 기다려야만 했다. 10여명의 김일성대학 여대생들은 꽃을 든 채 벌서 서너 시간을 서 있다. 공항에서 오는 도중 길에 나와 환영하는 인파가 임수경을 보기위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도착시간이 늦어지고 있단다.

이동방송 차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쏟아져 나왔다.

『평양시민 여러분

이곳 축제의 도시 평양에 도착하는 남조선 청년학생대표단을 열열히 환영해 줍시다! 꿈에도 그리던, 그리고 만나고 싶었던 남조선 청년학생들. 산 넘고 바다건너 세계 5대주에서 몰려드는 청년 학생들.

평양축전에 달려오고 싶어 남조선 괴뢰들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조선 청년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곳 평양에서 만남의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지나가던 사람들도 남조선 청년학생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고 목메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임수경 방을 쳐다보는 평양시민들 사진

가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판문점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던 우리의 학생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온갖 고문과 폭행을 무릅쓰고 통일을 하겠다는 애국심 하나로 통일 애국의 길로 나아가는 남녘의 애국 열사들과 칠천만 겨레의 도도한 걸음을 힘으로는 막지 못합니다! 여러분! 남조선 청년학생들을 우리는 열열히 환영해 줍시다!』

환영인파가 너무 많아 호텔 정문을 피해 캐나다 태권도 선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텔 뒷문으로 몰래 들어왔다. 그 순간 “왔다!” 하는 소리와 함께 호텔 로비로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나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임수경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동승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까지 들어가서 급하게 사진 한 장 찍고 나왔다.

회색 짧은 소매 티에 벨트 없이 색바랜 청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호텔에 도착한 “림수경”. 도착 30분 후 호텔 2층 접견실에서 공식 기자 회견을 가졌다.

완장을 찬 기자들만 입장을 시켰는데 나는 미국서 온 ‘동포 기자’라 속이고 비디오를 내밀어 보이고 기자회견장에 들어갔다.(계속)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