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모여 추석 준비하던 그 때가 그립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그 어려움 속에서 무서움과 괴로움을 가슴 한가득 안고, 감히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사연 속에 날과 날을 보내고 있을 널 그린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간다. 이곳에서 맞은 첫 추석이다 보니 고향생각과 너희들과 함께 추석을 준비하던 기억이 가득이다. 며칠전에 전화연결을 해 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또 보고 싶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인줄 알면서도 그리움에 이렇게 쓴다.


떠나온 고향에서도, 오늘 여기 서울에서도 추석은 한날한시이건만 어쩌면 가고파도 가지 못하고 오고파도 못 오는 세상인가. 고향에 흐르는 압록강의 물맛도 그 맛이요, 여기 서울에 흐르는 한강의 물맛도 그 맛이요, 사람도 언어도 다 같은데 왜 우리는 이렇게 너무도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뉘 탓이냐? 가슴 터지는 이 현실을 억누를 수밖에 없는 신세에 한숨이 절로 나는 구나.


너희들과 시동생들, 동서들, 조카들, 시누이들과 함께 추석을 쇠던 때를 정말 잊지 못하겠다. 당장 내일 끓일 것이 없어도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민속명절이고 먼저 간 조상들을 찾아뵙는 마음으로 이집 저집 모두가 추석준비에 붐비던 때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죄 아닌 죄로 추방을 가 이곳 저곳 쫓겨 다니던 시절에도, 장사를 하기 위해 먼 곳을 갔어도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려고 한걸음에 달려온 며느리와 제사상을 머리에 이고 발이 부르트게 산길을 걷던 일들.


손자 OO이가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투정질 해 할아버지가 업고 오르던 그 그리운 오솔길, 할아버지 산소에 가기 전날 벌초는 자기가 한다고 밤새 낫을 벼르다 손에 상처를 입어 가을 내내 고생했던 아들, 제사상에 올려놓기 전에는 안 된다며 사과를 달라고 떼를 쓰는 철없는 손자를 눈물로 매질하던 며느리, 모든 것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이 땅은 눈에 보이는 것이 풍년이요, 마음 먹으면 별의 별것을 다 올려놓을 수 있는데…. 순대를 며칠 동안 팔아서야 겨우 조상님 제상에 과일 몇 개 올려놓을 수 있는, 내가 살았고 네가 살고 있는 그 땅이 저주스럽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몸은 비록 이곳에 있어도 마음은 이미 그곳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묘소를 오른다. 오늘도 이 어미 없이 너희끼리 산소 갈 준비 하느라고 고달프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과 함께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정말 미안하다. 비록 이곳에 와서도 조선(북한)의 풍습대로 추석날을 기억하면서 그 땅에서 산소에 가던 그 심정 그대로 상에 놓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고 있단다.


아들아! 언제면 통일의 날을 맞고 함께 예전처럼 조상들의 성산을 찾을 날이 오려는지, 이 불행의 화근을 하루속히 끝장낼 날은 과연 언제일지 기약은 없지만, 어미는 압록강, 한강의 흐름과 더불어 이 땅에서 함께 모여 살 그날을 한없이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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