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따먹다 본보기로 공개처형 당하기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가 21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생존자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일부 탈북자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전 이유로 모자이크 처리했다./김다슬 인턴기자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었던 4년간 80여 명이 죽었다. 대부분은 굶어 죽었는데, 배가 고픈 사람들이 농사짓던 옥수수를 따 먹다 본보기로 공개처형 당하기도 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죽으려고 몇 번이나 결심 했었지만…”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가 9월 ‘북한 인권의 달’을 맞아 프레스센터에서 21일 개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생존자 증언대회’에서 1999년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자 김광일 씨의 울분 섞인 증언이다. 그는 단지 중국에서 한국 사람과 만났던 일 때문에 간첩으로 몰려 수용소로 보내져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야 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요덕수용소, 북창수용소 출신 탈북자 7명이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증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광일 씨에 이어 김혜숙 씨의 증언이 이어졌다. 김혜숙 씨는 13세부터 41세까지 북창 수용소에 무려 28년간 수감됐던 인물이다. 그가 수감된 이유는 고작 그의 할아버지가 6·25 때 월남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수용소에서 16세부터 14년간 석탄을 캐는 채탄공으로 일했다. 노동시간이 8시간으로 규정돼있지만 매일 16~18시간을 일했다”면서 “남자들은 30살이 되기 전에 대부분은 진폐증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증언대회에선 회령수용소 보위부 가족 출신 탈북자 허영미 씨의 증언도 이어졌다. 회령수용소(22호 관리소)는 한 번 수감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으로, 그는 오빠를 따라 수용소에서 몇 년간 생활하며 수감자들의 생활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수감자들은 개, 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며 “어린아이들에겐 어떤 교육도 없었으며, 그 여린 어깨에 가방을 메어 산에서 과일을 따오라고 시키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그 당시에는 수감자들이 죄를 지었으니까 응당하다고 생각해 동정심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남한에 와서 보니 그들이 너무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됐고, 죄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해체본부는 이번 증언내용을 종합·보완해 영문으로 제작, UN 등 국제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향후 북한인권 침해 사례 및 생존자 증언을 지속적으로 보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