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젊었을 때가 눈에 선해”

“큰 오빠 젊었을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해. 물어볼 말은 많은데 생각이 안나요. 이렇게 쳐다만 보고 있어도 좋은걸….”

환갑을 넘긴 6남매가 55년만에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

한순애(74.여), 기소(70), 기환(68), 순희(62.여)씨는 9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4층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서 북의 기석(77)씨를 만났다.

인천 강화군 교동면 4남 2녀 중 첫째 아들이었던 기석씨는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밀려들었던 6.25 전쟁 당시 친구들과 함께 의용군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가족들은 기석씨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백중날이 되면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기석씨로부터 한달 전에 상봉 연락을 받은 순애씨 남매는 놀라움과 반가움, 설렘에 상봉장을 찾았다.

6남매 중 다섯째인 기화(63)씨는 폐에 이상이 생겨 함께 오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반갑구나”라며 동생들을 맞은 기석씨는 가장 먼저 부모님의 생사를 물었다.

기환씨는 큰 형이 야속한 듯 “어머니는 30년 전에, 아버지는 27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기석씨는 “고향을 떠난 이후 너희 생각만 났다”며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큰 죄를 지어서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폭격을 피해 북으로 올라가면서 힘들었던 과정도 천천히 털어놓았다.

6.25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진 기석씨의 모습에 옥색 한복을 빼입고 큰 오빠를 만나러 온 막내 순희씨는 연방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순희씨는 “오빠가 내게 ‘며칠 있다 올 테니까 부모님께 잘해드려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가족사진을 보던 기석씨의 아들 광현(43)씨는 “나와 아버지, 사진 속 가족들이 너무 많이 닮았다”며 “역시 핏줄은 하나”라고 외쳤고 기소씨 역시 “큰 형님과 꼭 닮은 아이가 있다”며 맞장구쳤다.

6.25 전에 살던 집이 헐려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기석씨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보다 다들 늙었다”고 말했고,이에 순애씨는 “세월이 자꾸 간다”며 말끝을 흐렸다.

기석씨는 마지막으로 남에 두고 온 아내 소식을 물었다. 순희씨는 “6.25 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짧게 전했고 기석씨는 더 묻지 않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상봉실을 빠져나온 기소씨는 “직접 만나 손이라도 잡아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돌아섰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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