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김정일의 ‘운명의 선택’

북한이 예고한 장거리 로켓 발사일(4-8일)을 앞두고 북핵 외교가의 시선이 온통 북한과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위성발사’를 내세운 북한의 이번 ‘미사일 사태’는 20여년을 끌어온 북핵 문제에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는 것은 물론 미국의 버락 오바마 신정부와 북한 간 기싸움의 향방을 가늠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오바마 정부의 정책적 선택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대결이냐, 대타협이냐’의 갈림길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의 큰 흐름이 결정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힘의 대화’ 택하나 = 미국은 북한이 연료 주입을 강행한 만큼 장거리 로켓발사를 기정사실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특히 북한의 기세로 볼 때 로켓 발사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으로 북한이 중시하는 우호국가들까지 나서 북한의 자제를 촉구했지만 북한이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을 경우 어떤 대응을 하느냐다. 일단 미 국무부는 ‘미사일이건 인공위성이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2일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한 오바마 대통령도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을 준비중에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내 기류는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방부와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은 북한의 로켓발사시 ‘요격 카드’를 제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공세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현재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의 주도권을 쥔 국무부의 경우 ‘외교적 해법’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해 대북 압박을 가하는 방안과 병행해 북한과의 협상, 또는 6자회담을 통한 협의를 강화할 뜻을 밝히고 있다.

이는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진정한 변화’를 기치로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은 이른바 불량 국가와도 대화를 통해 그들의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새로운 슈퍼파워, 미국의 면모를 과시하려하고 있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레이스에서부터 전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실패한 정책’으로 규정지었다. 무리하게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바람에 북한의 핵능력이 제고되고 결국 핵실험을 하는 상황까지 초래됐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이후 오바마 정권 인수팀은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제시했다. 플랜은 북한 등과 ‘단호하고도 직접적인’방식으로 접근하겠다고 확인하고 있다.

대화는 하되 흔히 생각하는 원칙 없고 유화적인 대화가 아니라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북한이 이를 존중할 때만 과감하게 협상하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힘의 대화’로 정의되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다른 정책 라인이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지만 대북 협상 라인은 서둘러 구축했다. 특히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던 지난달 28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상적으로는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과 만나고 싶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높은 외무성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단호하고도 직접적인’ 접근 가운데 우선 ‘직접 외교’를 구사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정부는 일단 북한의 로켓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기회’를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오바마의 제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북한의 선택은 = 이른바 ‘김정일의 핵전략’은 외형적으로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년간 부시 전 미국대통령과 네오콘 세력이 펼쳐놓은 함정을 뚫고 정권 유지는 물론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핵보유를 과시하더니 끝내 핵실험을 함으로써 핵능력도 과시했다. 북한은 지난 15년의 ‘핵 게임’을 통해 노련한 상대가 돼버렸다. 따라서 미사일 발사 이후에도 간단치 않은 전략을 구사하며 오바마 정부를 괴롭히며 생존을 도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선군(先軍)외교 전술이 백분 발휘될 것이란 얘기다.

특히 미국과의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북한은 미국을 자극해 관심을 집중하도록 한 다음 극적인 국면 전환을 한 뒤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을 하려 할 것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하지만 긴 핵협상을 하는 동안 북한이 잃은 것도 너무나 많다. 최고 통치자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이미 신체적 이상까지 찾아왔다.

이 시점에서 김정일이 고려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아 보인다. 핵카드를 활용해 생존에는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김정일은 이제 협상판을 쉽게 뛰쳐나가기 쉽지 않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까지 참여하는 6자회담을 거부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힐 판이다.

지난 90년대 제네바 협상에 이어 지난 6년간 진행돼온 6자회담을 통해 세계인들은 북한의 핵전략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이른바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김정일의 협상전술이 과거와 같은 화려한 성공을 거둘지도 미지수다.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최대 5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로켓발사를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이 고조될 것은 뻔한 상황이다.

게다가 오바마 행정부가 지향하는 것은 ‘힘의 대화’다. 북한이 의도하는 ‘살라미’ 전술을 통한 시간끌기 시도를 무한정 용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시점에서 오바마의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속하고 과감한 거래를 위해 협상의 기준을 일정 정도 완화하고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오바마지만 끝내 북한이 기회를 거부하고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며 결국 판을 깰 경우 과감한 제재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흔히 민주당 정책을 카터 식으로 해석해 유화적인 성격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일반적으로 대북 협상의 방법에 있어서는 유연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데는 공화당보다 강경하다는 것이며 1990년대 중반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던 것도 민주당인 클린턴 행정부였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와의 과감한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극렬한 대결양상이 조성될 수도 있다”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건강이상까지 겹친 김정일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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