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김정일 정권이 또 다시 대포동-2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동해와 서해 이곳저곳에서 마치 사변이라도 내겠다는 듯 협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김정일이 다시 틀어대는 ‘대포동 블루스’의 숨겨진 가사는 “오바마여, 장군님을 잊지 말아요~”와 “서울이여,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한국정부와는 무관하다. 김정일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별시절에도 대포동 미사일 발사, 나아가 핵실험까지 했었다. 즉 한국정부와의 호오(好惡)관계가 북한도발의 원인은 아니다. 차라리 목표라면 미국 영토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의 경우, 오바마 정부를 함정에 끌어들이려는 전술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06년 7월 북한이 대포동을 발사하기 전후에 한국과 미국 및 주변국의 반응을 보면 족하다:
“만약 북한이 시험발사를 감행한다면 미국은 적절한 조치를 할 것(주한 미대사)”
“정부는 그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주시하고 있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한국 외무부장관)”
“미사일을 시험발사한다면 그것은 핵무기의 장거리 운반체계 확보를 실증한다. 당장 일본의 여론부터 핵 무장 쪽으로 선회할 우려가 짙다. 유엔 차원의 제재가 불가피하리라는 점을 북한은 명심, 국제사회의 인내심을 더는 시험하지 말기 바란다.(문화일보)”
“북의 미사일 위협은 위기상황을 조성함으로써 미국을 양자(兩者)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려는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이다.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김정일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그 속셈을 아는 미국이 북의 뜻대로 움직여 줄 리 없다. 미 행정부의 강경책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노선에 더욱 힘을 실어 주며, 중국의 조정자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다. 결과는 김 위원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권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동아일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경우 다양한 압력을 가할 것이다.(미·일 정상)”
여기에 클린턴정부 시절 국방부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와 국방부차관이었던 애시턴 카터 하버드대 교수는 공동의 기고문을 통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였다.
한국과 미국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 유엔제재는 물론 북한이 중국으로부터도 버림받을 것이라는 경고, 일본이 핵무장을 할 것이라는 경고, 비록 부시정부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선제공격의 경고, 다양한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경고 등, 경고에 경고가 김정일 정권을 향해 날아 갔다.
II.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고, 유엔제제결의안은 통과되었지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며, 중국은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돈독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미국이 경고한 “적절한 조치”는 시간을 끌다가 결국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리스트에서 해제” 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이에 반해, 당시의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주권국가로서의 합법적 권리이며, 만약 누가 이에 대해 압력을 가하려 든다면 다른 형태의 보다 강경한 물리적 행동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섰고, 한국의 친북좌파들은 “북한의 발사체가 미사일이건 인공위성이건 북한의 정당한 자주적 권리이며 자위적 조치로서 국제사회가 이러쿵저러쿵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김정일 정권에 화답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김정일에게 짭잘한 수확을 가져왔다.
지금 한국과 미국정부, 그리고 언론과 한국사회의 반응 역시 지난 2006년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대포동 미사일 소동을 처음 겪는 것처럼 조건반사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실천할 내용도 의지도 없는 공허한 경고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북한의 위협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보고 있음을 북한이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용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마 본인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경고들은 다만 수사에 그칠 뿐이며,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가 단지 미국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대북정책의 큰 구상으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시 종전협정과 미·북수교, 여기에 경제지원”을 제시했다.
지난 번 필자의 칼럼에서 예상한 바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협상을 통하여 북핵을 폐기시키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순진한 구상 하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안 없음’이 미국정부의 최대 약점이자 급소임은 물론이다. 여기서 미국정부가 “북한의 완전 핵포기”에서 “북한의 완전 핵포기 약속”으로 그 전제조건을 약화시킬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김정일은 미국정부가 “미사일 발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해도 필요하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바마 정부 스스로가 북핵 앞에서 얼마나 대책이 없는지, 얼마나 무력한지를 스스로 자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김정일 스스로 “미국 놈에게는 강하게 나가면 나갈수록 유리하다”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미사일 발사 후 한동안 제제니 봉쇄니 소란이 있겠지만 김정일은 버틸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약점을 북한은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 핵포기를 바라는 한, 그리고 그것을 협상을 통하여 성취하겠다고 공언하는 한 미국은 북한에게 다시 협상하자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 부시정부에서 우리는 너무나 확실히 보지 않았는가?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분명히 밝힐 점이 있다. 필자는 북핵을 용인한다거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미국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협상이라는 ‘거래’를 통해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북핵을 폐기시키기 위해서는 6자회담 자체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즉 6자회담은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정권을 포기하던지, 양자택일을 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도대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오바마 정부는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언젠가 다시 북한과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시작할 것이다. 미국정부의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가 어떤 내용도 없음을 확인한 북한은 낚싯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시간을 끌고, 미국정부가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놓일 때, “핵 폐기의 절차에 들어간다”는 합의를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 혹은 미·북수교와 맞바꾸려고 할 것이다. 물론 이 합의가 북한이 실제로 핵폐기 절차에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런 북한의 전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바로 부시정부 말기에 미국은 북한의 핵물질 검증 약속에 넘어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해제”를 실행했다는 점에서도 명백하다.
물론 미국정부는 테러지원국 해제가 그렇게 큰 비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종전협정, 평화협정 혹은 미·북수교와 경제지원 역시 북핵폐기의 이익에 비하면 그렇게 큰 대가를 치루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폐기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폐기 약속’은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해서, 실제 폐기가 아니라 ‘폐기 약속’만으로도 수많은 반대급부를 챙길 수 있는데, 도대체 왜 핵을 포기하겠는가?
오바마 정부가 김정일 정권에 의해 또 하나의 요리 가능한 미국 정부로 간주되고 싶지 않다면, 첫째, 공허한 수사적 경고를 남발하지 말고 둘째, 이 핵 씨름의 초반에 김정일의 뇌리에 분명히 각인되어 절대로 잊지 못할 교훈을 주어야 한다. 먼저 협상해보고 안되면 강하게(tough)하게 대처하겠다는 전략은 미국이 먼저 북한과의 협상을 깨야만 가능한데, 북한의 낚시질은 이미 그런 정도의 수준은 뛰어넘고 있다.
따라서 초반부터 오바마 정부의 말은 바위처럼 무겁고 행동은 산이 움직이듯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교훈이 꼭 페리식의 선제공격일 필요는 없다. 차라리 침묵에서 분노로, 이 분노가 북한이 결코 잊지 못할 긴 호흡의 행동으로 이어지면 된다. 지금, 시간에 쫓기는 것은 김정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