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고태진씨, 기자 맞아요?

▲ <오마이뉴스>에 실린 문제의 칼럼

『강철환 기자가 북한을 탈출한 것이 1992년이다. 그도 이제 남쪽에서 산 지가 십 수년이 된 거의 남쪽 사람이다. 그가 책에 쓴 수용소 생활은 1977년부터 약 10년간이라 한다. 북한이 아주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임을 감안해도 솔직히 그가 증언하는 북한 생활, 수용소 생활이 지금 현재의 북한 상황과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의문이다. 특히 북한은 2000년 6.15 이후 빠른 속도로 개방되고 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수용소에 있던 시절이라면 우리 나라도 거의 인권의 후진국이었다. 유신독재 시절과 광주 학살을 거치는 독재의 인권 암흑 시절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책으로 펴낸 것을 보고 현재의 잣대로 남의 나라 상황을 규정하고 재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 시절에는 <조선일보>도 광주에서 학살당한 시민을 ‘난동자’로 왜곡하며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침묵하지 않았나?』

‘확인취재’는 기자의 기본자세

<오마이뉴스> 고태진 기자가 쓴 칼럼의 일부분이다. 제목은 “6.15 아침의 ‘미국신문'”이다. 내용인즉 “남북의 평화와 협력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다잡는 행사가 되어야” 할 6.15공동선언 5주년의 날 아침신문에 <조선일보>가 부시 대통령이 북한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인 강철환 기자를 만난 사실을 1면 머릿기사로 삼은 것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칼럼 바로가기◀

다른 내용은 차치하고, 그러면서 고기자는 위에 인용한대로 강철환씨가 수용소 생활을 한 것은 1977년부터 10년간인데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겠는가, 1970년대 후반에는 남한도 인권의 후진국이었다는 식으로 칼럼을 썼다.

무식은 죄가 아니지만, 기자가 ‘확인’을 해보지 않는 것은 분명한 죄다. 물론 강철환씨는 1977~1987년 만10년동안 함경북도 요덕군에 위치한 15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고기자의 주장인즉 그 이후 수용소가 많이 바뀌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인데, 강철환씨 말고도 남한에 온 탈북자 가운데 정치범수용소를 경험한 사람이 9명이나 더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강철환씨 이외의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을 만나 그동안 수용소의 실태에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도 안해본 것 같다. 그러고도 ‘기자’라는 명함을 내걸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치범수용소, 하나도 바뀐 것 없다

강철환씨가 대표로 있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이다. 이 단체 회원인 김영순씨가 수감되었던 기간은 1970~78년, 김태진씨는 1988~1992년, 이영국씨는 1995~1999년이다. 강철환씨와 같은 기간에 수감되어있었던 안혁씨가 있고, 이영국씨와 같은 기간에 수감되어 있었던 P모(2001년 출소), K모씨도 있다. 이들은 모두 요덕 15호 수용소 출신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연결해보면 1970년대 초반부터 2001년까지 수용소의 변천사를 쭉 알아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동안 수용소의 구조, 수인들의 생활과 체벌방식, 전반적 인권상황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어떻게 30년동안 이렇게 일관될 수 있는지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에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을 모두 인터뷰해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요덕 15호 수용소의 수인들이 강제노동을 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한 화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남한이 인권후진국이면 북한은 최악 중 최악

고기자는 이런 것을 전혀 확인 안 해보고 칼럼을 쓴 것이다. 나아가 고기자는 강철환씨의 수기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그 수기를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다. 수기를 읽어봤다면 “그가 수용소에 있는 시절이라면 우리나라도 거의 인권의 후진국”이라는 표현이 절대 등장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수십 만명을 잡아가두는 수용소를 만든 적이 있나? 수인이 도주를 시도했다고 공개총살하고, 다른 수인들에게 그 시체에 돌을 던지도록 시켜 살갗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나게 만든 적이 있나? 부모가 죄를 지었다고 자식까지 포함해 온 가족을 평생동안 수용소에 잡아가둔 적이 있나? 하루에 강냉이 100그램을 먹이면서 강제노동을 시킨 적이 있나?

군사정권 시대 한국의 인권상황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고기자가 표현한대로 그때의 한국이 ‘인권후진국’이라면 지금 북한은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국가, 최악 중의 최악의 국가이다. 과거 ‘인권후진국’을 향해서는 서슴없는 비난을 퍼붓는 고기자는 왜 현존하는 ‘최악중의 최악’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가?

한국에 온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왜 모두 ‘요덕 15호’ 출신인지에 대해 궁금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요덕 15호는 정해진 형기가 끝나면 출소할 수 있는 북한내 유일한 수용소이다. 종신형을 사는 다른 수용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권상황이 나은 편이다.

그런 곳의 인권실태가 그 정도로 끔직하다면 다른 곳은 어떠하겠는가? 정치범수용소 경비병으로 근무한 적 있는 안명철이라는 탈북자가 있는데, 그가 전하는 13호 종성 수용소와 22호 회령 수용소의 실상은 끔찍하고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북한 인민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

고기자는 80년대에 <조선일보>가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왜곡했던 것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왜곡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기자는 “<조선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침묵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그러는 고기자는 왜 ‘최악의’ 인권에 침묵하고 있는가? 과거 <조선일보>가 그랬으니 나도 그래도 된다는 사고방식인가?

각설하고, 고태진 기자는 자신의 왜곡보도에 대해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에게 사과하고, 기자로서 기본적인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에 반성하며 자숙해야 할 것이다. 고기자가 진정으로 무릎꿇고 빌어야할 대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2천만 우리 동포들이다.

<조선일보>에 갖는 반감의 1%만이라도 김정일 정권에게 돌리고,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열정의 1%만이라도 북한인권문제에 할애했다면 이런 엉터리 칼럼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