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거라, 사는 게 극락이야”

6.25전쟁 때 헤어진 지 50여년만에 평양에 사는 딸 고은죽씨(74)와 화상상봉한 박인선 할머니(99.제주시 노형동)는 연신 ’오마니’를 부르는 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눈물만 흘릴 뿐 입은 얼어 붙어 있었다.

15일 오후 4시 상봉시간 직전까지도 “꿈인지 생시인지..죽어도 여한 없어”를 수 차례 되뇌이며 딸과의 상봉을 고대했던 박 할머니는 막상 딸이 비디오 화면으로 나타나자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아들 고용익씨(69)가 “어머니, 누나가 애타게 부르잖아요”라는 채근에 이어 “열 여덟살 때 서울로 간 딸을 알아 보시갔어요. 제가 은죽이에요”라는 딸의 말이 있고서야 “네가..내 딸 맞냐”라며 말문을 열었다.

고씨는 “누나가 1950년 6월 전쟁 발발 후 서울대 간호학과 재학 중 실종돼 죽은 줄 알았는데 20여년 전에야 재일교포인 작은 아버지를 통해 누나가 전쟁 당시 간호부로 인민군에 징집됐으며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후 일본을 통해 누나와 5∼6차례 서신 및 사진을 교환했으며, 이 때부터 어머니는 “살아 있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날로 더해갔다”고 전했다.

아들 고씨 및 손자 고호경씨(54)와 함께 한적 본사 상봉장인 금강산마루에 들어선 박 할머니는 한 시간여 계속된 딸과 외손자(도당훈, 도철훈)들과의 상봉 내내 “잘 살아야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거라. 사는 게 바로 극락이야”라며 70대를 넘긴 딸 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정을 내비쳤다.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박 할머니의 이런 간곡한 말들은 아들이나 손자의 ‘통역’을 통해 북에 있는 딸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상봉시간 내내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은 박 할머니는 딸 고씨와 외손자들이 “장군님 덕분에 만날 수 있었다. 통일된 후 다시 만나자”는 작별 인사와 함께 큰 절을 올리자 “오고가고 해라. 잘 살아야한데이”라고 말하며 또 다시 두 눈이 흥건해졌다.

시종 누나에 대해 “이 것으론 부족해요. 손도 잡아보고 부둥켜 안아보고 싶다”며 “우리도 상봉을 신청할테니 누나도 신청해요”라고 애원한 고씨의 목소리는 “우리 가족끼리만 만날 게 아니라 빨리 통일을 이뤄 1천만 이산가족과 함께 만나자”는 북측 가족들의 ’통일의 당위성’ 역설속에 묻혀버린 듯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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