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형님, 살아계셨군요”

“오라버니.형님, 살아계셨군요. 동생들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나”

27일 대한적십자사 강원지사에 마련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화상 상봉장을 찾은 김해이(71.여.동해시 망상동)씨와 동생 진응(68)씨는 그동안 죽은 줄만 알고 지냈던 북측의 맏형 진규(75)씨를 화면을 통해 만나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육 남매의 맏형인 진규씨와 남측의 나머지 가족들이 헤어진 것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당시 19세이던 진규씨는 고향인 정선군 임계면에서 남진 중이던 북측 의용군으로 끌려간 이후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다.

“동생들아, 이렇게 죽기 전에 만나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문을 연 진규씨는 고향 땅에 두고 온 부모와 누이들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모두 살아서 봤으면 좋으련만..”이라며 흐느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화면을 통해 상봉한 진규씨와 남측의 가족들은 이내 생이별을 하기 전 고향에서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하나 둘씩 꺼내 놓으며 반세기 전 청년과 소년.소녀시절로 되돌아갔다.

특히 맏형인 진규씨는 “어린 시절 너희(동생)에게 짚신을 삼아 주면 곧잘 망가뜨렸지. 그 때마다 무척 나무랐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철이 없었지.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며 당시의 미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헤어지고 난 후 단 하루로 거르지 않고 동생들이 살아있는 지…전쟁 통에 행여 잘못된 것은 아닌지 자나깨나 걱정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해이씨와 진응씨 등은 “남측 가족들은 오히려 오라버니가 죽은 줄만 알았다”며 “이렇게 북측에서 일가를 이루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여한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이날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가족들과 함께 지켜보던 해이씨의 외손자 남연훈(13.초교 6년)군은 “남과 북의 가족들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 화면으로 만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말해 반세기를 넘긴 분단과 이산의 아픔이 어린 동심의 눈에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광경으로 비쳐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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